그냥 생각

오늘 하루

another woman 2006. 11. 24. 18:28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뜬금없이 축하한다고해서 어리둥절하는데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고 한다.  근 삼십여 년 동안 대부분 잊고 지냈지만

남편이 먼저 말을 꺼내기는 처음이다.

대부분 나도 잊고지나가지만 생각나는 해에는 달력에 이 날에 큰 동그라미를 해놓고

이 날이 무슨 날이지를 얼마전부터 강조를 하고서야 꽃을 받고싶은 나에게

차라리 먹자라는 그를 따라  저녁 외식하러 나가곤했다. 그런데 오늘은 목소리만 듣고

얼굴도 보지못하면서도 빨간 장미 설흔 송이를 묶은 꽃다발과 와인이라도

한 병 받은 기분이다. 이 나이를 하고서도 무드에는 약한지 남편이 먼저

생각해준 것 만으로도 둘이 앉아 멋진 저녁이라도 보낸 것 같다.

 

사실 오늘 기분이 좀 그랬다. 병원에 혼자 가게 되어 머리 감기는 일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고 대야에 뜨거운 물 떠다 얼굴과 손발을 닦아드리고

대화하고 주물러드리고 기도하고 했다. 몸의 어느 부위라고는 모르겠는데 평소 냄새가 심히 나는

준중환자실의 그 할머니에게는 마지막으로 가게 되었다.

피곤하여서 손을 잡고 얘기만을 하였다. 그 분은 어떻게해야 기도를 잘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좀 놀란 것이 평시에 정신을 놓은 듯이 보여 그 질문이 예외였다.

손의 악력이 강하여 내손을 자꾸 몸의 어느 부위로 끌고가는데

오늘 따라 그것이 싫어 대강 하고 물러나왔는데 오면서 그곳을 봐주어야했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독실의 할아버지는 지난 주에는 환상과 얘기하며

팔을 자꾸 휘저으시더니 오늘은 혼수상태에 계신다.

간경화 말기로 온전신이 아파서 고통을 겪는 그 청년은

통증이 올 때 마다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애쓰는 듯 몸을 둥글게 말으려고

애를 쓴다. 그는 처음에는 완고하였으나 지금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늘 기도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아픔으로 인하여 고통 중에서지만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게 해달라는 내 기도에는 기도로서 통증을 없애지못할 것이라는

불신앙이 깔려있다는 것을 안다. 죽은 자도 살리신 그 분께 통증을 감해달라고

과감히 기도 못하고 통증 속에 있지만 마음에 평화와 감사를 주시라는 기도는

그 초신자 청년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을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기분이었다.

 

꽃병에 꽂아놓은 시들었다가 테이블 위로 떨어진 꽃들의 죽음과

영혼이 빠져나간 인간의 죽음에는 물리적으로 보면 동의점이 있다.

적어도 식물에는 고통을 느끼는 세포가 없을 것이니 시들어가는 과정이 다를 뿐이다.

 

남편의 전화는 나를 파랑과 초록의 세계로 데리고 왔다.

일상의 가벼운 즐거움으로 거실에 앉아 책을 읽고 테레비로 유선방송에서 하는

영화를 보고 전화를 걸고 받는 그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진다. 지는 해는 우수를 동반하지만 집으로 빨리 귀가하고싶어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인생의 끝머리에 와서 창조주의 품으로 발걸음을 빨리하는

그들에게 우리들은 알지못하지만 그 분께서 품은 꿈이 있고 그것을 이루어가시는

것이라고 믿고싶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그 믿음 쪽으로 마음이 달려가고 싶다.

어둠이 짙어가며 밤이 깊어가고 오늘 하루도 끄트머리로 밀려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