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새날에
한해가 가고 또 한해를 맞았다.
그동안 거르지않았던 자정 예배를 올해는 거실에서 cts방송으로 드리고
여기저기서 치루어지는 행사들을 보았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셀수도 없이 많이들 모인 군중들이
tv로 보니 한 덩어리로 착시를 일으킨다.
그들은 한밤의 추위지만 군중 속에서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아들이며 무엇인가 후회하고 무엇인가 결심하고
다짐들을 하고 했을 것이다. 해마다 반복이 되는 어떤 행사이지만
해마다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한해를 정리하고 한해를 상상하며
준비하는 과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그런 절차가 없어진 것 같다.
내 자신에게 내가 살아내는 인생에게 어떤 특별한 후회도 바램도
없어진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누군가가 내게
그런 소리를 했다면 그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너를 창주하신 그분의 뜻을 거슬리는 것이며 살아있는 생명체가
가질 태도가 아니다. 너 자신에게 잘못하는 것이다. 라며
좀더 떠들지도 모른다. 농구나 야구,축구 게임을 할 때
응원석에서 빅토리라는 글짜를 만들 때, 집을 짓기위해
벽돌을 쌓을 때 만약 글짜의 한부분이나 벽돌 한장이 빠져버린다면
그것은 안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하나 심령이 병들거나 나하나쯤 없어진다면
창조주가 꿈꾸시고 만드신 세상에는 벽돌 한장 빠지고 지은 집처럼
완전한 세상이 아닐 것이다.
이 한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마도 변함없는 일상성의 끝이 나지않을 것 같은 되풀이 속에서
다시 매너리즘에 빠져서 새해의 각오라던가 노력을 잊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인생에는 끝이 있다.
살고 싶어하던 유청년은 해골처럼 말라서 링겔병이 메달린
철대를 천천히 끌며 담배를 피고 유령처럼 걸어오던 그는 며칠 전에 다른 세상으로 갔다.
그는 며칠 안남았지만 본인은 그래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족들에게 아픔을 호소하고 담배를 피곤 했었다.
그는 나무에서 낙엽이 한 잎 떨어지듯 그렇게 갔다.
우리들은 그가 육체적인 고통에서 비로소 놓여난 것을 서로 속으로
안도하면서 그래도 슬프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끝이 있기에 생명체의 삶은 고귀하고
우리들의 남은 날들을 낭비하지않고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새해 첫날 가족들이 모여서 윷을 놀고 함성을 지르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고 그런 생활이 축복이고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현실을 감당하고 도약도 꿈꾸어야한다.
유청년이 진통제도 듣지않던 그 고통 속에서도
치유를 꿈꾸고 회복되면 친구들과 즐거운 식사 등을 꿈꾸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