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의 회상
요즈음은 저녁 때 혼자 있을 때가 많다.
나이 든 자 답게 자주 옛날 생각이 떠오르다가보면 잠시 옛날이 현재처럼
착각될 때가 있다. 위에 사진은 큰애 네살, 작은애 세살 때 였던것 같다.
작은 애는 그때까지 우유병을 빨아대곤 하곤 큰애는 유난히 동생을 아끼고 사랑했었다.
밑의 사진은 초등학교 사학년 삼학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이 아이들이 언제 커서 다 혼기를 앞두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하긴 사진 속의 나도 이십여 년전이니 젊기도 하여 나같지가 않다.
잦은 염색과 퍼머로 머리숱이 자꾸 적어져 이제는 미장원에 가도
아무도 나더러 숱 많다고 눈치하지 않는다.
전철을 타면 자리에 앉은 중년 여자들이 노화와 염색과 퍼머로 숭숭 빈
머리를 보면 괜히 민망해서 눈길을 돌리게된다.
얘 나는 어떠니. 솔직한 딸은 응 엄마도 조금 더 빠지면 위험하겠어한다.
문학자들이 아무리 시간이란 영원한 현재라고 주장하여도
내게 있어 시간이란 꼬리를 내빼며 달려가는 기차처럼 느껴진다.
중학교 다닐 때 한참 월남전에 병사들이 파병되어
때론 역사에 동원되어 태극기를 흔들며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하고
그 역사주위에 모여든 군중이나 기차 안에 타고 있는 젊은군인들의 비장한 눈길에
감정이 압도 당해서 목이 쉬게 노래를 부를 때
이윽고 처음에는 천천히 칙칙폭폭하다가 빠른 속도로
역사를 빠져 달아나던 기차처럼만 느껴진다.
이제 행여 이 끝머리도 역사를 빠져 달려나가겠지.
그리고 두 줄기 철도만 길게 남아있고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말겠지.
생각해보면 몸만 쇠약해가는게 아니라 마음도 약해간다.
좋게 말하면 온화해지고 부드러워진다고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기운이 없어지고 사소한 일도 귀찮아져 단념한다거나 허락하는 것이 아닐까.
상대방의 말이 분명 기타줄을 튕기듯 감정을 건드렸지만
아무 생각이나 요동이 일어나지않고 무감각해지는것,
이래도 저래도 별로 상관하고 싶지않은 것, 무슨 얘기를 들어도
먼저 드는 생각이 그럴수도 있겠지 애쓰는구나 싶은 것.
이러니 늙는다는 것이 어떤 면으로는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 오전 교회 가는데 아파트 단지 앞에 자동차 정비소를 지나게 되었다.
주일이라 그런지 삿시가 내려져있다. 평소에는 너무 복잡하여 눈에 띄지않는데
삿시 내린 공장 옆에 낮은 담이 있고 하얀 진돗개가 담 넘어 하염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있다. 어떤 생각이 있는 이십대 청년 같은
눈길을 하고있는 개가 신기한데 딸이 엄마 잠간 있어봐 하고는
골목 마트로 가더니 소세지와 고기가 섞여 동그랑땡을 만든 것을 한봉지 사왔다.
그것을 주는데 낮은 담을 드려다보니 새끼 두마리가 그것들을
부지런히 먹는데 어미는 꼼짝도 않고 우리를 바라본다.
새끼들은 통통한데 삐적마른 어미에게서 그가 짐승이라는 생각이 안든다.
지능이 있고 어미 노릇을 제대로 하는 그의 인간이 느껴지는 눈길을 보며
잠시 나는 저 진돗개의 자식 사랑에 감동되어 나의 아이들과의 옛날을 뒤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