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제목을 쓰고나니 거창한 느낌이 든다.
이 지상의 한 구석에 자리한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헤아릴수없이 많은
여성인구가 있다. 그들의 각자 인생이 다르기도 하지만
공통적으로 딸에서 아내와 어머니의 입장에 서게된다.
그 시골 산 중턱에 있는 흙과 나무로 되어진 목사님댁에
한 눈이 실명되신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하룻밤 자고가는 우리 세사람을 그 분의 한 쪽 눈만 빛내시며 소리없이
마음으로 환영해주시었다. 자식들이 다 결혼하여 당신들을 떠난
가옥에 목사님 내외분과 어머니 한분이 계시었다.
방문하던 오후 모포기들이 작은 트럭으로 하나 들어왔다.
논은 언덕 밑에 있어 사람들을 모으니 여섯이 되어 언덕 위의 모판을
논두렁으로 옮기었다. 모판은 생각보다 무겁고 햇빛을 못보고
실내에서 싹을 튀운 모들은 어찌나 연한지 가벼운 바람에도 옆으로 눕고만다.
맞은 편 산의 갖가지 초록색들이 햇빛으로 출렁이고 찰랑이며
갖가지 색갈을 연출해내는 동안 우리들은 모들을 다 운반하였다.
평생 처음 해보는 농촌 실습이었다.
오전 내내 버스를 타고 모를 날랐더니 밤에는 기도회를 하자고
계획하였으나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 너무 일찍 잠들어 중간에 깨어
창으로 검은 비단 같은 하늘에 반짝이는 다이야몬드 같은 별들을
바라보며 이생각 저생각 했지만 노동은 영혼을 어느 정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어찌나 꼭꼭 숨어서 눈에 뜨이지않는 고사리를 꺽고
벌써 세어서 억세버렸지만 아직 연한 햇빛 때문에 빨개진
드룹을 꺽는 동안 할머니는 저만치서 우리들을 주시한다.
일거수 일투족을. 한눈만 뜨시고.
그리고 한밤 더 자고 가. 나 때문에 그냥 가는거지. 속삭이신다.
사모님의 반나절을 지켜본 우리들은 도시의 아내들이 하는 노동의
몇배나 하는 그분이 일에 지쳐 목소리도 커지고 반사적으로 큰소리가
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세 자식들의 김치와 밑 반찬을 다 마련하고
나오는 손자손녀들 뒷바라지 산후 바라지 온갖 바라지를 말없이 감수하고
최선을 다하여 지문이 없어지도록 일을 한다.
적요 만이 감도는 집에 어쩌다 손님들이 들어오면 강아지들부터
신이 나고 접대하느라 아내는 더욱 마음이 바빠진다.
세탁기나 가스불이나 냉장고, 자가용도 없는 시대를 사신
할머니의 몸은 지금까지 얼마만큼의 노동과 사랑과 인내를 감당해왔는지
가늠이 안된다. 과연 자식들이 그 노고를 알아주고 감사해할까.
내자신을 보면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핑게를 대며 부모 보다는
자식에게 단연 관심과 사랑이 죄책감 없이 가는 것을 안다.
생각해본적이 없지만 나의 아이들이 과연 나를 내가 자기들을 생각하는 것 만큼
여길까. 물론 아닐 것이고 아니어야 내 마음도 편하다.
할머니의 수고와 사랑을 자식들은 잘 알고 감사히 여길 것이다.
평생을 뒷전에서 온갖 수고를 다하며 대들보처럼 집안을 지켜오고서도
자신의 존재가치에 점수를 못주는 것은 여존남비 사상의 유교의 잔재이기도하다.
그러나 할머니 자신이 자기를 용납 못하는
당신 때문에 손님들이 더 안 자고 가버린다고 생각하시는 그 낮은
당신의 존재감이 여성의 존재나 일생에 대해 생각하게된다.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기선을 서로 먼저 잡으려고
작은 알력을 가끔 일으키는 딸은 이런 옛날의 어머니들의 인생을 용납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