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자식 사랑 2

another woman 2007. 11. 27. 10:38

어느 날 저녁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름을 알수없는 바닷새에 관한 것이었다. 엄마 새는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다

새끼들을 먹이는데 새끼들은 노란 주둥이를 엄마 목 깊이 밀어넣어

엄마가 물고온 먹이를 먹고 자란다. 먹이가 쉽게 구해지지않을 때 지치지않고

애쓰며 비행하고 노력하여 먹을 것을 목에 까지 구겨넣고 자식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미물이라고 느껴지지않는다. 그러나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어미새는

둥지에서 새끼새들을 몰아낸다. 둥지에서 떠나지않으려고 바둥대는 새끼새마저도

매정할 정도로 몰아내고만다. 마지막까지 떠나지않으려다 결국은 밀려나

바닷물에 떨어진 새끼새는 안간 힘을 다하여 날아올라 날기 시작한다.

얼마를 날다가 그는 둥지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는지 섬으로 돌아가나

그곳은 바닷갈매기 구역이라 눈이 금속성인 갈매기는 어린 새를 보더니

가차없이 찍어대며 몰아낸다. 여러 군데를 찍혀가며 이리저리 몰리던 새끼새는

날아올르는가 싶더니 바닷물에 떨어져내려 파도에 이리저리 밀리고 말았다.

처음부터 강건하게 살아남는 새도 비실거리다가 일찍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새도

다 한어미에게서 태어났다. 자연은 어떤 주먹구구로 어떤 자는 강하게 어떤 자는 약하게

태어나게 하는지 모르지만 적자생존이라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사랑이라는 것이 있어 다른 모양을 연출한다.

그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자식 사랑이라고 생각된다. 흔히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물이 아래로만 흘러가고 위로 흐르는 것이 어렵듯이 사랑은 밑으로 흐른다.

 

열달동안 뱃속에 잉태하여 낳았을 때 그 자식이란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한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어르고 몇년이 지나야 혼자서 일어서고 밥먹고 한다.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보살피며 동거동락하는 동안 부모들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고 산다. 인격적인 보살핌이 되도록 좀더 잘먹이고 입히고

좋은 교육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자식 사랑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든다.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붓듯이 하는 사랑이라서

부모들은 자식들을 잊지못한다. 이래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위력이 있다.

자식들은 늘 보살핌이나 물질이나 그런 것들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감사하기보다는 너무 당연하고 부족하면 불만이 되는 세태가 되었다.

모든 것들을 주며 자식들을 길렀지만 그 자식들은 또 자기들의 자녀들을 기르느라

부모에게는 신경을 쓰지못한다. 요즈음 가끔 골목길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구루마에

박스나 온갖 폐품 종이들을 가득 싣고 그 구루마를 힘겹게 끄는 노인들을 보게된다.

전철 안에서 신문수집을 하시는 분들도 대개 연세들이 있으시다.

무료한 시간이 싫어서 일하시는 분들은 다행이지만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출가시키느라 노후를 준비하지못해 힘겹게 일하시는 노인들도 상당수가 되신다고한다.

 그럼에도 부모 마음은 다 마찬가지인지 그렇게 살아도 마음 한가운데는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는 소원들을 가지고 계시다. 목사님은 자식에게는 베풀 기회가 있지만

부모님은 그 기회가 오도록 사시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부모에게 잘해야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그 수천년 전에 인간에게 주신

십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란 오계명이 있을까. 그정도로 오르막 사랑이 어려운 것이다.

 

결혼 삼십 주년이 이라니 여행다녀오라고 애들에게서 돈을 받았다.

그런데 그것이 고맙고 그동안 사소하게 받았던 선물들이나 돈들이 다 기억된다.

지금까지 자식들에게 준 것은 기억이 안되는데 받은 선물들은 기억이 된다.

자식 돈은 어렵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의 돈은 왠지 아까워 받기싫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받아야 한다는 충고를 듣게된다.  봄에 딸아이에게서 받은 돈에 조금 보태어

경비충당을 하는데 얘기를 들은 아들도 기꺼이 한몫해 충분하고도 남게되었다.

부모가 주신 금액에 비하면 사소한 액수이지만 부모의 돈은 당연하고 자식의 돈은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드는 것은  평등하지않음에도 불구하고

왠일인지 마음은 그렇게 돌아간다. 주신 두 아이로 인해 희노애락을 겪으면서

창조주의 마음을 좀더 이해하고 그렇게 귀한 한 자식을 교만하기 짝이 없던 나를 위해

내어주셨던 그 사랑에도 진정한 감사를 하는 것에 무지했던 자신을 깨우치는 계기도 되었다.

자식 때문에 누리고 배웠던 그 많은 은혜로 자식이 더욱 사랑스럽고 창조주께도 감사로서

머리가 더욱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