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이민 교회

another woman 2008. 6. 30. 01:13

주일이라서 교회에 갔었다.

교회가 참 아름다운 곳에 있었다. 뒤로 과수원이 있고 그 옆으로 농장들이 펼쳐져있다.

동서는 찬양팀이고 삼촌은 차량안내팀의 일원이라서 한 시간가량 일찍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과수원 너머로는 농장이 펼쳐져있는데

잘생긴 말들은 눈을 가리운채 그래도 풀을 익숙하게 뜯어먹고 있었다.

들판이 온통 노오랗다. 그 들판의 지평선이 하늘과 맞닫아있고 제트기가

지나간듯이 일직선의 흰구름들이 짙푸른 하는 중앙으로 뻗어있는 것이 신비롭다.

멀리 침엽수들의 빽빽하게 서있는 것이 수없이 많은 영국 병정들이 열병식을

하고 있는듯하다.  모자를 쓴 작업복 차림의 미국인이 장난감 같은 작은 트랙터같이

생긴 잔듸 깎는 기계를 몰며 한길 가의 그 기나길게 뻗은 풀을 깍아가고 있다.



동서는 찬양팀으로 살구색 티샤스에 흰색 바지를 입고 삼촌은 노란 카라가 있는

파란 잠바를 입고 차량 봉사를 한다. 부부가 함께 부서는 다르지만 봉사를 하는 것이

고맙다. 이민 교회는 어떤 특징이 있다. 물론 어디나 다 같지만 목사님은

좋은 교인들을 교인들은 영적으로 바로 선 카리스마가 있고 설교 말씀이 훌륭하고

행동이 함께 가는 목사님을 만나는 복이 절실히 필요한 현장이 이민 사회이다.

훌륭하신 분들도 많지만 교인들이 영적으로 깊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기보다 시험에 들게하고 영주권을 얻기위해 목회를 한다거나

자신의 소명이 아닌줄 누구보다 자기가 잘알지만 방향전환을 하기에는 어렵거나

너무 늦거나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 길을 계속 가는 목사님들도 많다.

교인들끼리는 사이가 좋으나 목사님과 비꺽거리다가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교인들을 자기의 양으로 품기보다 신경전을 하며 자신의 적으로 생각하는

목회자가 이민교회에는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독립교단 목사님 안수식에 갔다가  격려사를 지금이라도 늦지않으니

그만 둘수만 있으면 그만 두라고 농담겸 진담을 하시던 분이 생각난다.

미국에서 이민 교회를 오래하신 분인데 자신을 물고 늘어지는 교인이

전화하면 아무리 오래 시비를 걸어도 다 들어주고 전화가 끝날무렵엔

억울하여 속이 뒤집어져도 좋은 충고 고맙고 나중에 다시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전화를 달라고 부탁하신단다. 목회 중 너무 괴로우면 한가지 방법이 있다고해

모두들 긴장하며 듣는데 온화하신 인상의 그 분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그래도 참으세요 하여 그 강당 안이 웃음바다가 일어났었다.

그러나  그런 분을 만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상처난 자신의 감정이나 마음을 눈에 보이지않지만 더욱 심해지는

쪽으로 일을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교인들도 이민 사회에서 자신의

뜻이나 역량을 발휘하기 힘든 이유인지 교회 내에서 자신을 내세우며

자기 뜻대로 교회를 좌지우지 하려고 시끄럽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모인 사회치고 어딘들 조용하기만 한 곳이 없겠지만 특히 이민 사회는

 어느 세월이 지나면 누구집 수저 수도 알수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사건이 일어나고 조용히 잠재울 수도 있는 일을 너도 나도 떠들며 전파하다가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을 사람들의 소문으로 큰 일을 만드는 일이 많다.



요즈음은 어디나 살기 어렵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 오래 산 교민은

아파트도 몇채, 벤즈도 몇대라면서 한참 잘나가더니 어쩐일인지

내리막을 달리다가 그 와중에 이혼을 하고 모든 것을 잃고

지금 복덕방을 하는데 어쩌면 홈리스(집 없이 떠도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숨짓는다. 너도 나도 페이먼트가 힘이 들어 집을 팔기를 원하고

집을 사는 사람은 없으니 복덕방은 하루에 한 건의 매매도 없을 적이 허다하니

집 페이, 차 페이 등은 뒷전으로 먹고 살기도 어렵다고 한다.

이런 때에 교회가 할 일은 교인들이 영적으로 강건하고 바로설 수 있어

환경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영적인 복을 풍성히 누리며 그 모든 고난을

극복해나가도록 인도해나가야할 것이 교회의 의무이며 특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