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비상구 옆의 창가의 자리로 배당이 되어 그곳에 죽치고 앉아
열 두어시간의 비행을 방법이 없어 참으며 견디었다.
집에 돌아오자 다시 시차문제가 걸리고 다리가 저리며 붓기가 안빠진다.
잠을 안자고 버티다가 한낮에 서너 시간 소파에서 시체처럼 늘어져자고
밤에는 다시 말똥거리는 정신을 재우느라 힘이들어 불을 켜고 일어나 앉았다.
이런 깊은 밤 갑자기 뛰어드는 생각이 나를 사로 잡는다.
돌아오니 외삼촌이 돌아가셨다고한다. 다들 당뇨가 깊은 줄 알았는데
간암이 온통 퍼진 상태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가족들은 암말기에 당연히 있을
무서운 통증을 겪기 전에 돌아가신 것이 다행이라고한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왠지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하셨다.
그 시간이 시차로 전화하기 어려운 시간이었고 외삼촌의 그 쾡하고 허무한
눈이 떠오르며 반사적으로 나쁜 소식들으면 여기서 어쩌시겠어요 하며
반대하자 어머니는 순순히 그러마하셨다. 그러나 외삼촌이 눈 감으시기 전
누님을 찾으셨다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치않다.
예기치않은 것은 결코 아니나 당연히 닥아온 그 죽음이 왠지 부당하게 느껴진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은 너무도 지당하다. 그러나 그 지당함이
우리들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순리이며 법칙인 것이 서글프다.
한 생명을 단숨에 끝내버리는 죽음이라는 존재는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거대한 바위처럼 저 언저리에 머물러
꼼짝도 하지않고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이 불면 못견디게 흔들리며
거리나 뜰에서 휘날려 어디론가 굴러가야만 하는 것이 목숨을 가진 존재들의 운명이다.
어제 큰고모 내외와 시동생이 아버님 드리라고 사준 약등을 가지고
아버님을 방문하였다. 아버님은 왠일인지 시동생이 써준 편지를 드려다보지도
않으시고 어머니의 안부를 물으신다. 이제 절벽 끝이 기다리는 동지로서
같은 라인에 서계신 동무와 같은 연민을 느끼시는 것을 알겠다.
어제 아버님은 어쩐 일인지 피부도 좀더 윤기가 나는 것 같으시고 검은 머리도
좀 많아지신 것 같다. 어쩐 일인지 더 잔잔해지고 마음의 중심으로 눈길이
가있는듯 보이는 아버님의 영혼은 더 외로와 보이신다. 그러나
육신은 어쩐지 지난 날의 젊음이 완전히 가버리기 아쉬워서 잠시
돌아와머물러 있는 것 같다. 식당에 내려오신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들이 그새
많이 바뀌어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
깎아놓은 과일 접시가 비자 아버님은 이제 약 같은 것 사오지말고 가보아라 하신다.
운전을 하던 고모부가 문득 오늘 아버님이 좀 생기가 나시고 젊어보이시네 말한다.
잠시 침묵하던 고모가 그게 기분이 나빠. 당신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잠시
그렇게 보였던것 생각이나 대답한다. 아 그거구나.
왠지 아버님의 육신에 잠시 돌아와 머물러있는 생기가 어떤 징조처럼
묘한 슬픔으로 가슴에 꼿히던 이유가.
두팔을 벌리고 맞이 하려고 골목 밖까지 나오셔서 기다리는 인자하신 그 분으로부터
왠지 잠시 고개를 돌리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