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구월이 가면

another woman 2008. 9. 24. 20:19

추석이 지나고 시월이 가까워가는데도 한낮에는 여전히 더위가

떠나가지못하고  도시의 아스팔트로 가득 메워진 거리에 서성대고있다.

그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 중 더위를 못참는 한 중년남자는 아침에 출근할 때

입고나온 긴팔을 벗으며 가로수 그늘 밑에서 안경을 벗고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이제 가을과 봄이 지구온난화 현상에 발마추어 없어져가고 있다고한다.

아직 행군하지않고 여름을 고집하며 머물러있는 계절탓에 상점들이 나라비를 서있는 

거리에 투명한 날개를 단 잠자리들과 열대성 나방들이 살이 쪄서 날개를 둔탁하게

저으며 날아다니고, 검은 선그라스 낀 여인이 손으로 채양을 만들어 햇빛을 가린다.

사과 재배지가 중부지방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지 한참이다.

그러나 날씨와는 상관없이 달력 속의 세월은 정확히 하루도 빠짐이 없이 흐르고있다.

 

구월이 가면 일년의 사분지 삼이 가버리고 이제 사분지 일이 남아있다.

건강이 화제의 중심이 된 현대의 인생이 엿가락처럼 길어져 육십이 청춘이라고,

몸은 이래도 마음만은 이십대라고 즐겨 얘기하며 자신을

자조적으로  위로하는  노년을 바라보며 마지막 걸음을 옮긴다해도 이 가을은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청춘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 마지막 사분지 일인 셈일까.

가로수의 잎들은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다들 자기들의 몸에 고운 물을

드리려 꿈을 꾸고 더러 애쓰며 한껏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싶을것이다.

그 잎새들마다 마음은 간절하고 몸으로도 노력했어도 결산이 가까운 지점에

닥아갈수록 가을잎들이 무성히 달린 한 나무에도 가지마다 잎들이

물드는 색도 다르고 상한 잎들도 조락하는 잎들도 많이 있다.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라고 흔히 말한다. 봄이 갖가지 아름다운 색의 꽃들이

화사하게 만발을 하여 아름답다면 가을은 갖가지 단풍으로 산야가 물들어

봄과는 다르게 아름답다. 우리들이 나무라면 우리들이 잎이라면

이 맑은 가을에 아직 한조각 남아있는 열정과 청춘의 색갈을

나이가 주는 평강과 경험과 자비와 연민들을 마구 뒤섞여서

자신이 물들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갈로 마지막 가을을 단장하고

싶은 염원을 이루기위해 마음으로 애를 쓸 것이다.

 

구월이 가면 거리의 바람은 저 북쪽 시베리아 벌판으로부터 불어올

채비를 하고있다. 구월이 가면 가슴은 먼 어느 한구석부터 얼음이 채워가듯이,

젊은 시절의 무분별하고 저돌적이며 희망에 불을 지피던 것처럼

지난 여름의 열기와 흥분이 식어가며 생긴 재가 어느 형상을 만들며 

닥아오는 가을을 반길 것이다. 더러는 병들어 미리 떨어져내리고

더러는 좌절과 염세로 썩은 가지를 만들었지만 이세상의 생명을 지닌 대부분의

만물들이 앞 다투어 마지막 한획을 확실하고 아름답게 그리려 소원하는,

자신의 작품을 겨울이 오기 전에 물들어가는 단풍들에게 하늘들에게 남기려고

마지막 햇살이나 가슴에 숨은 작은 한조각의 희망에 온마음을 다걸 것이다.

구월이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