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
드라이브하다가 공원이나 해변에 비어있는 벤치나 의자를 보면
왠일인지 사탕을 본 아이처럼 마음이 흐믓해진다.
어쩌다 빈 의자 사진을 찍는데 처음 찾아진 이 사진을 올려본다.
흐린 날 하늘이 잿빛이고 그 잿빛을 반영한 물 색갈도 어둡고 의자의 색도 칙칙하지만
바닷가를 산책한 후 그곳에 앉아 엷은 피로를 풀기에 좋을 것 같다.
그 곳에 가 앉기보다 주로 차에 잘 앉아있지만 차에 앉아
그 빈 벤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곳에 가서 앉아 몸을 쉬고 마음을 쉬었을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그 의자들은 움직이지않고 늘 그 곳에 있으면서
어느 누구나 찾아와도 말없이 포용하여 준다. 어느 누구나 찾아와
그 빈자리에 앉아 먼 수평선이나 몰아치며 밀려오는 파도들이나 바람에
못견디게 나부끼는 나무들이나 바라보며 안식할 수 있게하여 준다.
바람은 구름을 한쪽으로 밀고 가 샛푸르른 하늘을 보여 주다가
반대쪽에서 몰아치는 강풍에 먹구름이 다시 몰려오는 것을 보고있으면
왠지 그 모습이 광야라고 불리는 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살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아직 젊었을 때는 그를 빈 의자처럼 여기어 자주 그의 마음에 앉아 쉬곤했다.
그러나 낯선 곳으로 생활터전을 옮기고 나름대로 열심이었지만
상황이 뜻대로 움직여주지않는 이민 생활에
몸이나 마음이 피곤하여 그의 마음에 좀 앉아 쉬어볼까 바라보면
그 역시 어디 포근한 곳에 앉아서 안식을 얻어야할 상태인 것을 알았다.
물론 밝고 좋은 날이 훨씬 더 많았고 즐거운 기억들도 많다.
어디서 살던지 삶의 모습은 누구나가 다 비슷비슷하다지만
이 사진처럼 일상이 칙칙한 색갈이던 날이 더러더러 있었다.
언제부터라고 금그어 말할 순 없지만 그의 마음이 나의 빈의자가
되지못하게 되고, 아마 그도 상대인 나에게 같은 것을 느꼈으리라.
서로 바라보아도 앉아 기대어 안식하기 어려워져도
늘 교회로만 가던 그가 잘 지내는 것 같아보이면,
지극히 인간적인 성품에 고집마저 세었던 나는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그 해안에서 하염없이 달려와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차 안의
내가 마치 없는듯이 해변가의 풍경의 일부로 남아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다가 돌아오던 때가 어제처럼 팔을 힘껏 뻗치면 손이 닿을듯하다.
그에게 창조주는 빈의자와 같이 좋아도 힘들어도 늘 달려가는 대상이다.
왠지 오래 반항하다가 느리게 느리게 그쪽으로 돌아섰지만
이제는 창조주의 품에서 감사와 평강을 누리는 날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러나 가을이 잠시 머무는 이 석양무렵 동네 놀이터에 단풍이 몇 잎
떨어져있는 빈의자라도 보면 무엇을 향해서인지 모르는
엷다란 그리움이 슬며시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