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woman 2009. 4. 5. 08:23

 

 

그대가  떠난 후 그 자리에 촛불을 킵니다.

심지로 불길이 위로 올라가며 그 자리 주위가 그윽히 밝아집니다.

흰벽에 스탠드 그림자가 신비한 자태로 마치 그림자가 아닌 한 물체처럼

떠오릅니다. 낮에 보면 평범한 꽃병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고귀한

항아리처럼 바로 그 자리에 기뻐하며 분명하게 놓여 있습니다.

불길이 슬며시 찾아간 주위로 어둠이 여전히 불빛을 커틴처럼 포근히

감싸고 있습니다.

 

밝게 타오르는 그 불빛의 한가운데는 적요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침범치못할 그 고요가 타오르는 불 가운데 있습니다.

마치 폭풍의 한가운데 바람이 전연 없는 무풍지대가 있듯이 불 한가운데

적요가 있습니다. 그 불은 주위의 모든 것을 태워버려도 자신의 마음의

중심은 태우지 못합니다. 그 자리는 자신의 몸 한가운데 있지만 자신의

치외법권 지대인 신과의 해후를 위한 자리입니다.

언제나 그곳에서 우리의 마음을 만나 다정히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분은 늘 부정하거나 잊어버리고 고개를 외로 돌리며 외면하고 싶어하는

우리들을 망부석인양 움직이지 않으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왜 자꾸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 싶어하는지요.

 

불빛을 바라보며 마음이 그윽해져갑니다.

어둠이 주위를 커틴처럼 드리워주듯 잡다한 일상들이 차마 옆에

올수가 없는듯 멀리 물러가 있습니다. 이 곳이 현실인가요.

밥솥에 쌀을 담고 씻을 때 희뿌연 물 속에서 누워있는 쌀들을 보면

왠지 슬픔을 느낍니다. 그런 것을 먹고 잘 소화해야  아프지않고

살 수가 있고,  늙어가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육체가 왠지 슬픕니다.

육체는 부드럽고 연약하고 아름답지만 마음의 변두리는 아프리카 광야의

가시나무들처럼 뾰죽하고 메마른 잔가쟁이 투성이 일적이 참으로 많지요.

괜한 일에 쫓겨가며 감정을 소진해가며 살아가는 무리들이 한 방향으로

달음박질 쳐가고있는 인생들이  안간 힘을 쓰는것이 헛헛하게 느껴지는 것이

서글픕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촛불이 주는 불빛에 홀려서 그 분이 우리를

만나시려고 애타게 기다리시는 자리가 눈에 보입니다.

그 불의 중심인 우리들의 마음의 중심에, 전에는 우리들 자신이 한번도

깨달아본 적이 없는 만남을 위한 그 분의 자리가 있습니다.

 

촛불은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을 위로하려고 밤이 깊도록 저혼자 

스스로 타오르며 소진해갑니다.

이제는

그만 그 만남의 자리에 걸어나올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