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자기 앞의 생

another woman 2009. 6. 10. 07:03

 

 

저자가 에밀 아자르라고 되어있지만 원래 그것은 로맹가리의 가명이라고 한다.

로맹가리는 자기 앞의 생이란 소설로서 두번 째의 콩쿠르 상을 수상하였다.

 

모하메드를 줄인 약자 모모라고 불리는 주인공 소년은 실제 나이는 열네살이나

자신의 나이가 열살인줄 알고있다. 몸이 장농처럼 뚱뚱한 로자 아줌마와 맡겨진

여러 아이들과 살고있다. 로자는 유태인으로 수용소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아 파리에서 몸을 팔며 살아오다가, 삼십오년간의 뒷골목 생활에서 오십이

넘자 은퇴하여 자기 동료들이 낳은 아이들을 많아 길러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거리에서 몸파는 여자들은 아기를 낳아 그 아이에게 진정으로 정을 주며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만 당국에서는 그녀들이 아이를 돌볼 자격이 안된다며 아이를

빼앗아 사회복지 기관으로 보내 양부모를 찾아주므로 여자들은 로자부인에게

양육을 부탁해왔다. 그 아이들 부모들로부터 오는 아이 양육비로 살아오는

로자부인은 특별히 아랍인인 모모를 사랑한다.  그는 그녀를 의지하며 때론 도둑질을

하면서 필요한 것을 충당하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애견을 부유한 여인에게

거액을 받고 팔고 그 돈을 하수구에 버려 개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표하기도한다.

모모는 여자 셋을 관할하는 뚜쟁이 아버지가 엄마를 죽이고 정신병원에 가게되자

로자에게 맡겨졌는데 로자는 부모가 누구인지 가르쳐주지 않지만 어느 날 찾아온

아버지로 인해 자신의 출생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로자는 정신병 경력이 있는

부모를 둔 아이는 입양이 안되므로 자신의 사후 모모가 걸려 그 남자에게 모모가

아들임을 숨기고 그 남자는 심장마비로 숨진다. 모모는 아버지라는 남자의 죽음에도

로자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신도 로자아줌마 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로자는 늙어서 몸을 가누지못하고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자 자신을

병원에 입원시켜 억지로 살게하는 치욕을 당하게하지 말아달라고 모모에게

부탁한다.  그녀의 병이 점점 중해져 더이상 집안에서 로자를 돌볼수 없어지자

주위 사람들은 로자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하고 로자는 죽기를 원해 모모는

주위사람들에게 로자의 친척이 찾아와 그녀를 고향 이스라엘로 데리고간다고

거짓말을 시키고 이런 때를 위하여 로자가 준비해놓은 지하실 방으로 그녀를

옮긴다. 로자는 얼마안되 숨을 거두고 모모는 평소 로자가 하던 화장을 진하게

해주고 향수를 뿌려준다. 시신이 퍼렇게 변해가고 냄새가 심해지자 그는

화장을 더욱 진하게 해주고 훔쳐온 향수를 병채 뿌려대며 로자아줌마의 곁을

지킨다. 참을 수 없는 악취의 근원지를 찾아서 사람들이 안으로 잠겨진 문을

부수고 들어오자 죽은지 오래되어 썩어가는 로자의 옆에 누워 굶주림으로

실신해가는 모모를 발견하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에 대한 생각이 든다. 육신은 균형잡힌 음식물로

살아가지만 그 육신 안에 든 영혼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그 사랑이 남녀 간이든

혈육이든 기른 정이든 총체적인 사랑의 어느 한 부분이 살아있는 인간의 영혼에

꼭 필요하다. 팔십오살의 이삿짐처럼 뚱뚱한 늙은 창녀 출신의 로자와

실제로는 열네살이지만 열살인 줄아는 조숙한 모모 사이에의 기른 정은

마치 피로 이어진 혈육의 정보다 더 깊고 그들이 서로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 부모없이 살지만 늘 희망을 갖고싶어했던 모모는 그녀가 죽고나

혼자남게될 것을 슬퍼했다. 이유도 없이 매를 맞으며 그 때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개의 눈처럼 평생 행복한 적이 별 없었던 자기 앞의 생을 바라보는 로자 아줌마가

정신이 나가버리면,  간호하는 모모는 아픈데는 없어도 팔다리가 다 떨어져나간듯

험난했던 그녀의 인생이 끝내는 그녀 앞에서 그녀를 배반한다고 느끼며 사람들

각자 자기 앞의 생에 펼쳐지는 허무를 어린 나이임에도 알아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고등학교 다니던 큰언니의 노트를 훔쳐보면 써있던 글 중

인생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말라라는 시구가 생각난다.

그래도 슬퍼하거나 노하지않기에는 세월이 얼마만큼 필요하고 그 세월이

지나간 다음에는 복구하거나 다시 행해보기에는 세월이 얼마남지않는 그

시점이 되는 것은 좀 아이러니하지만 어쨌던 그렇다. 목숨을 가진 생물들이

특히 인간이라는 종은 더욱이 생존하기에 적당한 물리적 환경 외에 사랑이라는

이 한 요소가 필수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나 학교, 사회라는 관계 등에서

여러가지 좋거나 나쁜 인연들을 맺게된다. 그런 인연으로 인해 이어져나가는

인생의 역정이 어떻게 전개되어나갔는지 지나온 다음에 그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 짚어볼때, 자기 앞의 생은 액자 속의 그림처럼 분명해진다.

인간들의 관계는 불안전하고 헤아릴 수 없는 슬픈 사연들이 생겨나지만 친구 간에 

혈육 간에 남녀 간에 모든 관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부어주시는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하면, 이 수없이 얽히고 섥힌 실타래같은 우리들 앞의 인생의

함정들을 비록 피해가지 못하더라도 함정에 빠져 함몰하지않고 다시 빠져나와 

우리들의 생 앞에서 꿋꿋하게 다시 한번 서볼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각은 우리가

아무리 늦었다고 생각이 들지라도 결코  늦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