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하루
가끔 있는 그의 치과 진료봉사에 따라가게 된다.
그 날은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 산꼭대기 교회가 있는 군인들을 진료를 하게 되었다.
한 쪽에 강을 옆구리에 끼고, 강건너 다른 쪽은 연달아 이어지는 산들을 끼고 달렸다.
길은 흐린 날씨 탓인지 물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산들에서는 구름이 산들을
감싸, 속도를 내어 달려가는 그 길이 어느 외길 미로를 달려가는 꿈 속처럼 느껴졌다.
가파른 언덕을 구비구비 올라오자 구름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구름 위로 솟아있는
산정상 위로 다시 구름이 펼쳐져있었다. 궁창 위에 있는 물과 궁창 아래에 있는 물이란
귀절이 이해가 갔다. 산등성이에 걸쳐 퍼져있는 구름들이 바람에 밀려가며 이리저리
퍼져가는 것을 바라보며 옛날 어느 선비가 높은 산에 있는 누각에서 주위 풍경을
바라보며 가슴을 벅차게 흔드는 그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할 말을 머리를 짜내어도
생각해낼 수 없어 점점점 찍고는 울고내려왔다는 일화가 생각이 난다. 몇 마디의 단어를
나열한 글귀로는 도저히 표현이 어려워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 풍경에는 기이한 힘이 있다.
사람의 언어와 단어가 지닌 한계를 느끼며 그 자연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
불경기라지만 옛날과는 다르게 경제가 나은 탓인지 청년 군인들은 충치를 가진 수는
몇 안되고 이가 깨어졌다거나 양치질이 잘 안되어 풍치가 되는 편이 많았다.
얼굴이 희고 단아한 청년들은 질서정연하고 조용하다. 의무적으로 치루어야하는
집단생활에서 유니폼이 주는 획일화 속에서도 개인들의 개성이 얼굴마다 숨어있다.
점심은 김치넣고 돼지고기 볶은 것과 열무김치, 김, 된장국이었고 우리들은 손님이라고
풋고추와 쌈장을 따로 주었다. 밥을 쪄서 그런지 군대밥은 쉬 배고프다며 나오는
길에 쌀로 만든 버거빵도 원하면 한개씩 가져간다.
일이 끝나고 대장님이 액자를 하나 주어 사양하다가 할수없이 가져오게되었다.
하루를 보내고 하산하는 길에 함께 탄 오늘 발치를 한 중사가 차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저기 곰취가 우리를 보고 웃고있네 한다. 조금 놀랐다. 나이먹은 중년의 중사가
바람에 이리저리 눕는 길게자란 풀들 사이에 얼굴을 내미는 봄나물들을 알아보고
그 식물이 사람들을 보고 웃고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무뚝뚝하고 부하의 물음에
위협적일만큼 직선적인 대답을 하던 양으로는 너무 부드럽고 정서적이라서
한 남자 안에 들어있는 여러 면들이 감탄스러웠다. 그는 곧이어 저녁밥을 먹어도
되냐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 단조로운 일상의 되풀이에서 외지인이 들어와
이를 빼준 것이 큰 일이라도 되는양 작은 진폭이 느껴진다.
유배지처럼 자유롭던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사회와 단절된 또하나의 조직적이고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만하는 그런 사회에서 이년 지내다 다시 돌아오면 모든 것이
새롭고 도전 의식에 가득차서 일상들이 새롭게 느껴지며 힘찬 행군을 할 수 있을것 같다.
처음에는 자유를 저당잡히고 타의로 움직여야하는 것이 괴롭겠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집단의 한 점으로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얼굴은 각자 달라도 군복이라는
유니폼이 주는 제한에 억매여있기에 너무 젊고 너무 활기찬 그들의 육체와 마음의
억압은 무표정으로 일관되어 있다가 잠시 치아를 보는 사이에 그들은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들이 전역을 하고나 사회에 휩쓸려지내다가 문득 자신의 몸을 명령과
규칙에 의해서 움직여야했던, 하루의 외출이나 휴가의 짧은 시간들이 가슴 설레이게
하는 기쁨이 되는 특수한 상황이 그립게 떠오를 때도 있을 것 같았다.
집에는 본차이나나 도자기 그릇이나 크리스탈 등 주부 초년생일 때 탐을 내며 하나씩
모아둔 그릇이 점차 소 닭보듯 흥미가 없어지다가 여행지에서 물컵이나 작은 그릇이
필요할 경우 플라스틱이라도 반갑고 귀하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 심리처럼.
여행에서 돌아와 얼마인가 지나면 그 결핍의 시간이 참으로 즐겁게 회상이 된다.
돌아오는 길은 흐린 탓에 날이 곧 어두워진다. 어둠이 깃들이는 강가에 다시 운무가
유령처럼 피어오르고 차는 그 물기의 집약인 안개를 헤치며 달리기 시작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