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전철 안에 있는데 핸드폰으로 아버님이 길에서 쓰러지셔 응급실에 계시다는 연락이 왔다.
무명남으로 등록이 되어 필요한 검사는 마친 상태로 얼굴과 어깨에 심한 찰과상이 있었다.
늘 을지로 3가에 가시는 것으로 소일을 하시는데 그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종로 3가에서
내리셔, 갑자기 다른 주위 풍경에 어디로 가야할지 어쩔줄 모르시다가 내려쬐는 태양빛에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지셨는데 행인이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셨다. 말씀은 없으시지만
동갑이신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도 심리적인 충격이 되어으리라 생각되었다. 응급 조치 후
정신을 차리시고 집에 오신 후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달력 앞에 서셔서 쓰러지신 날짜를
손으로 가리키시더니 이 날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단 말이야 하신다.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 시아버님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처음으로
세워진 실버 타운으로 들어가셨다. 벌써 십칠년이 되었다. 그곳은 처음에는 활기가 있었다.
새벽마다 남산으로 산책을 하고 늘 서울 근교의 유원지나 고궁이나 음식점 순례,
각종 취미반과 행사들이 많고 남녀 노인분들과 활발하게 참석하셨다.
그러나 해가 갈 수록 참석인원이 줄어들고 버스도 대형버스에서 소형이 되고
이제는 그 소형버스도 출발하지않고 건물 앞에 서있기 일쑤이다.
아버님 방에 가기위해 엘레베이터을 타면 에레베이터 벽에 각종 행사 안내문이
걸려있는데 방에서 아버님과 담소하거나 다과를 나누다보면 참석 인원이 되지않아
프로그램이 취소됩니다 하는 방송이 나오기도 다반사이다.
아버님 왜 안가셔요 바람도 쐬시고 좋잖아요. 가면 뭘하냐. 바람은 무슨.
그 이후로는 말이 없으시다. 생각에 그래도 그런 곳에서 한바퀴 돌면 기분전환도
될 것 같은데 왜 이 방에서 머무는 것을 택하실까. 다른 노인분들은 왜 그러실까.
그러나 벌써 여러해를 그런 일을 반복하신 후라 그런 일에 대하여 흥미도 잃고
기운도 기분도 없어져버리는 것같다. 마음조차 검버섯이 피고 탄력을 잃어 주름이
가득한 피부처럼, 그 마음도 건조해지고 주름져서 생에 대한 오만 흥미나 동기를 잃고
잊어버리는 것인가보다 막연히 짐작이 간다. 시설이 좋은 당구대에도 하루종일
두어분 다녀가시면 다행이고 그 좋은 시설도 별 사용하지들 않으신다. 어쩌다 들려왔던
할머니들의 윷놀이의 환성이나 기도실의 조용한 웅성거림도 더 이상 들리지않는다.
특별히 식당에서 할머니들은 그래도 이쁜 옷들을 입으시고 호박잎이나 풋고추라도
들고와서 건강을 이유로 닝닝하기 짝이 없는 식당 밥을 즐겁게 드시기위해
소녀들처럼 소근소근 밥을 드시지만 할아버지들은 여기 한명 저기 한명 앉으셔
말없이 식사를 마치고 휭 나가버리신다.
아버님이 계시는 한 칸의 방에는 화장실, 미니 싱크대와 작은 냉장고 하나
화장대 하나 옷장 하나 침대가 있고 왔다갔다 서성일 작은 여분이 있다.
작년 친정어머니가 오셨을 때 시아버님이 초대하셔셔 그 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친정어머니와 시아버님이 자식들의 혼사를 위해서 만나셨을 때는
그래도 두 분들이 아직 힘이 있을 적이어서 그런지 너무 늙으신 두 분의
모습에 서로 좀 놀라며 연민을 느끼시는 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아련하다.
친정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게 닭장이지 어디 난 못살겠다.
그러나 방 셋에 작지만 응접실 둘, 무엇보다 아주 넓은 뒷뜰을 가진 주택에
사시는 분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자녀들이 방문해야지만 사람 구경을 할
수있는 어머니. 시아버님은 식당이나 방문만 열고나가면 같은 연배의 동료들을
만나신다. 원래 말수가 적으신 아버님은 복도나 식당에서 노인들을 만나도
그냥 지나치거나 고개를 끄덕거리시거나 질문에 한 단어의 대답으로 끝내신다.
사람 속에서 살아도 주택에서 사람 구경을 할 수 없는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외로우시다. 살아가는 일이나 자기 자식들의 일로 한창 바쁘기도 하지만
자녀들은 방문하여도 한끼 식사를 같이 나누고 얼마인가의 시간을 함께
한후 돌아가게된다. 아버님은 자식들의 집에 절대로 가지않으신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는 아버님이 고맙기도하고 때론 오지않으셔서 받게되는
부담감이 무거워 갈등하는 이중 마찰이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 속을 가만히 바라보게된다.
다행히 간병인이 마음에 든다고 하시며 그렇게 권해도 옷도 안갈아 입으시더니
간병인 아주머니 말에는 어리고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하시다.
아버님이 어느 순간인가 씩씩한 모습을 잃어버리시고 야단을 치시기도하며 기르던
그 자식들의 잔소리를 듣고 묵묵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