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제목 없음

another woman 2009. 9. 30. 03:13

 

 

 

가끔 시외 버스를 탈 기회가 있습니다. 서울을 벗어나면 만나게되는 논과 밭들에서는

가을 곡물들이 풍성하게 가득 차서 익어가고 있습니다. 빛나는 누런 이삭으로 가득

찬 가을 논들에 부어지는 햇살 속에서 쌀들을 작은 나무에 매달린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고있는 벼들이 아름답습니다. 가로수들에 달린 은행들이나 산수유 열매들도 풍성하고

벌써 익은 것들은 땅으로 떨어져 누군가 집어 모으거나 먹어줄 새들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지난 봄 어느 기사 아저씨는 살구나무가 행군을 하고있는 길에 다다르더니

자. 과일좀 줏어갑시다 하고 버스를 세웠습니다. 이 분 쯤인가 길가 가로수 밑에서

살구를 줍고는, 저번에 줏었더니 참 달았어요 하며 승객 몇 분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승객들은 따라 내리지않았지만 기사 아저씨의 여유를 웃으며 함께 누렸어요.

시외로 나가는 버스 편을 묻는 분에게는 핸드 폰을 해서 자세히 물어보며 가르쳐줍니다.

혼자 가시느라 적적하겠군요 하면서 고개를 돌려 껌도 하나 줍니다. 오늘은 남녀 두 노인

분이 올라타시더니 외상이야 하시며 그냥 뒷 좌석으로 가도 아무 말 하지 않아  역시 서울

인심과 다르구나 생각듭니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와 화려한 노랑의 큰 얼굴을

자랑하는  해바라기 꽃이 가을 풍경의 압권입니다. 그 아름다운 노랑이 다 지고 검게 변색하여

쪼그라져 말라붙은 꽃잎들과 웅크리고 앉아 여물은 씨앗들이 무거워 고개 숙인 해바라기는

패잔병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얼굴 속에 가득 차있는 씨앗들은 내년 봄에 피워낼 또 다른

아름다운 꽃들을 하나씩 그 가슴에 품고 있는 위대한 전사들입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지나가면서 마음이 무거운 까닭은 무엇일까 잠시 혼란스럽습니다.

아마 이 결실의 위대한 계절은 아무래도 두 얼굴을 지니고 있는가 봅니다.

곡식이 무르익고 과일들이 단맛을 더하도록 빛이 더욱 가중되는듯 현란한 이 가을 햇빛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가슴에는 거친 형상의 돌들이 지층으로 쌓여있는 듯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변함 없이 되풀이 되는 일상이 안도감을 주지만 어떤 때는 왠지 그 하루가

탈출하고싶은 멍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일상이 사소하고 미묘한 어느 감정의

연줄로 무겁고 낡아져 그 날의 일상은 늙고 퇴락한 얼굴이 되어 대면하고 싶지가 않아

지지만 그런다고 피해갈 수가 없지요.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것들이

먼지가 화장대 거울에 살폿이 내려앉듯이 마음의 창에 끼여있습니다.

어느 것은 정체를 드러내어 수정이 가능하지만 어떤 것은 도무지 안개처럼 근원지도

알 수 없이 가슴 속에서 피어오릅니다. 이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뭉근히 솟아오르는

불안과 아픔은 어디에서 출현하여 가슴을 가득 채우는 걸까요.

 

한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난 밤 외출에서 돌아오는 전철 길,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서

자리만 보이면 가서 앉게되는 것으로 참 나이도 많이 먹었구나 생각들지만, 자리가

보이자 얼른 앉았습니다. 옆의 남자에게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본의는 아니었지만 대화 내용을 들었습니다. 아내가 팔월에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병원에 갔더니 췌장암 말기로 판정 받아 세브란스에서 항암치료를 하고 있지만

이제 사개월 정도 남았고 가망이 없으니 동네 근처 병원에 통증조절만 해줄 수 있는

병원으로 옮기란다고 한다. 중학교 이학년과 초등학교 오학년의 자녀들이 있고

가는 날 까지 좀 덜 아프기만을 바란다 라는 등등의 이야기였습니다.

샘물 호스피스에는 통증조절 등 외는 해줄 것이 없는 말기암 환자들을 위한 곳으로,

그 곳을 소개해주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남자는 어느 정거장에 오자

문이 닫히기 전 황급히 내리고 플랫폼에 서서 전화를 계속합니다. 그 곳을 소개못해서

인지 그 안경 낀 사십대를 넘긴듯 보이는 남자의 얼굴 위로,  누런 모습에 눈가가 초록의

이끼가 끼는 연못처럼 초록기를 뛰우고 깡마른 몸에 복수가 가득 찬 배를 무겁게 위로

하고 약기운이 떨어지면 점령군처럼 잔인하게 밀려올 통증에 자신을 내줄 수 밖에

없는 비탄에 찬 여자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

두고가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닥아오는 죽음의 모습을 단독으로 대면하면서

싸워야할 회한과 분노나 체념조차 그 지독한 통증을 이기게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공사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거리의 작은 다리 밑에 흙바닥에 상자의 종이를 넓게 피고

모로 누워 잠에 골아떨어진 남자 노숙자 허리 위에 하얀 아기 고양이가 몸을 한뭉치

솜처럼 동그랗게 말고서 자기도 자고있습니다. 주말이 아니지만 멋진 유니폼들을 입고

머풀러로 얼굴을 가리고 커다란 안경을 쓴 자전거 행열이 쉬지않고 지나간 후 잠시

바람만 적요하게 그 길을 쓸고 지나가는 한강변, 작은 숲 사이에 쪼그리고 앉은 머리가

까치집 같고 언제 빨았는지 수 없는 옷을 입고 하염없이 강 저 쪽을 바라보는 여인도

있습니다.  여인은 언제 정상적인 삶을 넘어 노숙으로 왔는지 그 전의 삶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처럼 하염없이  바라만 볼 수 있는 저쪽일 뿐이겠지요.

 

며칠 동안 만난 여러 가지 장면들로 마음이 무거운가 발자취를 따라가보지만 

그것들도 마음의 거울에 내려앉은 먼지들의 일부에 불과할 뿐 존재의 근원은

어쩐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슴에 가득한 불안이  지구의 가장 바로 밑 중심에서

끓고있다는 용암처럼 우리들의 마음과 몸 중심에서 끓어대고 있나봅니다.

자신의 몸 속에 있지만  전혀 통제 불능의 구역인 그 곳에서 무엇인지 모를 것이

시시로 마구 끓어대다가 시나브로 조용해지고 이런 것들을 자제하기에 너무

참을성이 부족한 성격을 나무래야하나 봅니다.

 

그러나  너무  아름다운  가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