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엄마의 마음

another woman 2009. 11. 13. 06:04

 

 

여호와를 경외하며 겸손하고 감사하게 살아야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 세가지 중에서 감사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루이스는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더이상 겸손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으나 그래도 경외나

겸손은 어느 정도 된다는 자만(?)이 있다. 그러나 왠일인지 감사는 마음이나

감정의 상태에 따라 굴곡이 심하다. 어느 날 어느 때 어떤 상태에서는 넘쳐흐르는

감사로 주체가 힘이 들다가 어느 날 어느 때 어떤 상태에서는 같은 제목으로 그동안

해오던 감사는 어디론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불안과 걱정의 우물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가 있다. 현실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감사할 뿐이던 그 때와 같지만 흔들리는 마음이 되면 왜 그 감사는 빛을 잃고

고개 숙이며 방구석 그늘 진 곳으로 밀려나고마는지 모르겠다.

 

얼마전에 만나 하루를 같이 지냈던 고교생 일학년 아들을 둔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우리들이 모여 나눔을 하는 자리에서 아주 가벼운 어투로 아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여름방학 이 후 학교를 가지않는다고 한다. 별일은 없었던 것 같고,

친구가 어떤 잘못으로 선생님께 혼나는 그 자리 옆에서 소리내어 웃었다가 함께

혼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도 강경하게 주장하여

어쩔 수가 없어 그러면 네가 쉬고 싶은데 까지 쉬어보라고 한 것이 이렇게

몇달이 흘렀다고한다. 아이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해보고 싶어하는 것이 없고

무슨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새 교복이 입어보고 싶다고 하여

학교를 가면 사주겠다고 했더니 안입겠다고 하여, 새 교복을 입어보면 행여

학교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가봐 사주었더니 한번 입고는 말더라고한다.

상담도 받게하고 병원도 가게하고 그동안 안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애를 썼지만 아이는 변함이 없다고한다. 그 엄마는 간간히 웃어가면서 무슨

가벼운 이야기라도 하는양 담담히 그간의 일들을 설명했는데 자식 가진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이 남의 얘기라고 듣는 것 같지않았다. 그녀는 아들이라고 그 애

하나라  사랑했는데 지금 그러는 그 아이를 어느 때보다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가장 마음을 썩이는 그때에  그 아들에 대한 흘러넘치는 그 사랑은 애절하고

피를  말리는 것에 가깝다.

 

짐을 풀고 강의실로 가는 길은 깊어가는 오후의 산 속 특유의 적요가 깔려있다.

그 엄마는 아들에게 핸드폰을 한다. 일어났니. 콘디션은 어떠니. 밥을 맛있게

먹고는 푹 쉬라고 말하고는 얼굴을 돌린다. 이 곳에 도착하기 전,  삼년 전에

한번  방문했던  소년원에 봉사하는  팀의 차를 함께 타고 왔기에  들리게 되었다.

첫방문이면서도 호박죽과 식혜를 정성껏 만들어와서 나누어주고 그들을 안아주던

그녀는 말했다. 나의 아이도 한발만 잘못 디디면 저애들 같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저 애들이 너무 마음을 흔든다고 말한다. 아들만 마음을 잡으면

자기도 팀과 함께 이 봉사를 하겠다고 말한다.

 

자식 복도 자기의 분복 중에 속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세상의 잣대로

너무 괜찮은 자녀를 가지고 감사한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괜찮은

부모인데도 자녀의 문제로 마음이 아프다.  이럴 때 강사님들은 그 자녀들이

부모의 영적인 순화를 위하여 수고하고 있다고 해석을 해주지만 그것이

맞는 것을 알아도 그리 동의하고 싶지않다. 자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녀로 인한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려는 그녀의 마음의 갈등이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 모두에게 느껴져 분위기가 숙연하다.

그러한 감사를 할 수 있기까지 무엇인가를 자꾸자꾸 내려놓아야하는데

두 손에 움켜쥐고 마음으로 움켜쥔 것들을 진정 내려놓은 것은 어렵다.

어제는 내려놓았는데도 오늘은 여전히 움켜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속되는 감사는 정말 쉽지가 않다.

더구나 어렵고 나쁘기만한 모든 상황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는 더욱 쉽지가 않다.

가진 것 모든 것에 주어진 것 모든 것에 대한 진정한 감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그 날이 되면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