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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한 십년 전 쯤에 찍은 것 같다.
마그지는 입이 짧아 아들이 사다주는 작은 깡통의 밥은 잘 먹지만
내가 사오는, 값은 더 싸면서 세일을 자주 하는 큰 깡통의 밥은 한사코
거부하여 하루 종일도 굶곤했다. 버릇을 고치겠다고 굶기면 섬세하고
정이 많은 아들은 몰래 그가 좋아하는 비싼 것을 먹이곤했다.
밖에 나갔다가 가스 불을 끄지않은 것 같아 중간에서 황급히 돌아왔다.
오면서 냄비가 가스 불에 쫄다가 타서 불길이 퍼져나가는 광경과 깨끗이
닦인 가스레인지의 모습이 겹쳐서 떠오른다. 가스 레인지를 닦은 것은
생각나는데 그 일이 언제 였는지 가물거린다. 어제 아침이나 저녁 이었을까
아니면 오늘 아침이었을까 도무지 확신이 서지않았다. 다행히
집에 돌아오니 가스레인지는 반짝거리게 닦여있고 노란 색갈 행주는
깨끗이 빨려서 널려있다. 가스불을 끌때 다른 생각을 하면서 껐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않은 탓, 왠일인지 요즈음 꿈이 잦고 아침에 깨어날 때
쯤이면 머리가 혼돈 속에서 꿈인지 생시인지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나이란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 연세 드신 권사님들이 좀 부러운 시선으로
아직 젊어 좋겠다 하는 소릴, 간혹 들을 적도 있다. 그러나 나보다 젊은
이들을 볼 때 아아 세월이란 참 냉정한 것이구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 같이 이런 경우 어벙하게 마음을 조리며 거의 달리다싶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노란 행주를 박박 빨던 것이 떠오르며 언제 그랬나, 무슨
철학적 명제를 고민하듯 생각이 헤매였든 스스로가 우습다.
철없던 어린 시절이나 태아가 모습을 잡아가듯이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꿈과 희망으로 확연한 나무로 자라나야할 시기에 이런 카오스 상태의
물결에 몸을 맡겼던 것 같다.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도 정립되지않고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꿈도 없이 그저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긴채 마음은 자주 갈등을 하면서 지금의 언덕의 기슭에 달했다.
지금까지 눈에 띄일 만한 뭔가 있지도 않고, 뭔가 이루어 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 혼돈의 생명을 긍휼히 여기셔 아이들의 한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기쁨을 누렸던 것이나 생의 굴곡의 비애나 보람의 사이들을 아슬아슬
지나가며, 지금까지 살아온 은혜가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