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또 다른 고향

another woman 2010. 7. 1. 11:00

 

작년 가을 관악산에서.

 

 

또 다른 고향이란 것이 있기나한 걸까 모르지만  시드니 이 곳은 내겐 또 다른 고향이다.

돌아온지 이주가 다 되었다. 왠지 모르지만 특별히 시간이 빠르게 가는듯 여겨지는

이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너무 바쁘게 보내야한 탓인지 그 이주는 마치 사나흘처럼 여겨지게

흘러갔다. 

 

공항에서 집까지의 길도 여전히 변함없다.  늘어선 테라스하우스나 그 지붕들을 덮고 있는

프라타나스들이 초겨울이지만 늦가을 기분이 느껴지는,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는 보도

위에 가여운 작은 시체처럼 즐비한 깊은 갈색으로 변한 잎들이 시선을 끈다. 사실 이곳의

특징이라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주위 환경이나 모습이  언제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눈이 휭휭 돌아가게 사람들과 빌딩들이 많고 늘 자극적인 것들로 흘러넘치던,  서울에서

칠년 년 만에 그는 팔년 만에 돌아오는 나에겐 이 곳의 차창 밖으로 가기 전과 변함없는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동안 여러 번 다녀가긴 했지만 그 때마다 한결같은 풍경에   

왠지 아늑하고   필름을 뒤로  되돌리는  영화를  보는듯 과거 속으로 달려가는 듯하다.

찬란한 초겨울의 맑은 햇살 속에서 어떤  빛나는 은혜처럼 찬연히 각가지 붉디붉은 색으로 빛나며

우리를 반겨주는, 아직 가을 잎들을 달고있는 단풍나무들이 반갑게 남아있는,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고 내려가는 집으로 가는 길을 달리며, 깊어가는 가을 서울에서 산에 오르던 기억이

나면서 이 곳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잘 안되었다.

 

먼저 와 기다리던 이삿짐도 배달되어 대충 정리가 끝나고, 수도 시설이나 전기 시설 손 볼

것도 했고 가라지의  천장이 기울어 이 곳 카운슬에서 나와 그부분의 천장을 모두 띁어내는

공사는 아직 일주일은 더 해야한다. 식탁과 서랍장 주문 한 것도 배달이 서울 보다 너무

느려 급한 성격을 고치지못한 이유로 이 곳에서 지내기가  쉽지않다. 이 곳에서도 한국 가게는

현금으로 지급하면 배달비 없이 그날로 배달해주는데 이 곳 가게는 배달비를 많이 받고도

이주 이상은 있어야 물건을 받을 수가 있다. 상점 주인도 손님이 있어도 다른 손님과

수다 떨 것을  다 마친 후에야  다음 손님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온다.

세상에 뭐라도 급할 것이 없는 이 곳 사람들의 여유가 부럽지만 아무리 살아도 그 여유가

배워지지 않고,   아직도 은행 등에 줄이 길면 그냥 나와버리는 등,   아무도 알아주지도

겁내지도  않는 성질은 고쳐지지 않는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엘지 컴퓨터가 이동네에서는 왠일인지 먹통이 되어버려  삼성 컴퓨터를

가지게 되었다.  시스템이 다른지 사진 올리는 법이나 여러가지를 아직 깨우치지 못해서

낯설고 불편하다. 이런 제품 하나를 바꾸어도 심정적인 불편이 있는데  고향을 떠나 오래살은

적이 있으나 늘 타향처럼 느껴지는 또 다른 고향에 돌아온 심정은 복잡한 면이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일생의 어느 부분 부분들을  대나무처럼 마디를 짓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한 것으로  또 하나의 마디를 더하였 다. 모든 것이 무작정  즐겁던 초등학교

시절이나  심각하던 청년 시절과 결혼이나  부모가 되는 일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도록 함께 살던 일

등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 시기를 정리해주는 마디와 마디가 그때마다 늘 있었던 것 같다.

이 마디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생을 이루어나가며,   고향이나 또 다른 고향이나 어떤 의미에서는

타향이나  마찬가지이고 창조주의 품 안만이 거룩하고 영원한 본향이고 고향인지도 모른다.

그 곳에  들어가서야,

마음과 육신이 방랑을 비로소 마치고 따스하고 그윽한 평강의 안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