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카뮈(1913-1960)는 프랑스의 소설가로서 신문기자, 교사 등을 걸치면서
작품 이방인, 페스트, 전락 등으로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 장례 통보를 받고 장례를 치르기위해 양로원에 갔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않고 어머니를 한번 보겠냐는
말을 거절하고 아무런 동요없이 태연히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장례를 치룬 다음 날 바닷가에서 마리를 만나 시간을 보내고 코메디 영화를
보고 정사를 나눈다. 어쩌다 사귄 친구 레이몽이 여자가 자기를 속인다며
구타하는 것을 돕다가 아랍인들에게 위협을 당한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아랍인들과 싸우다가 헤어졌는데 다시 바닷가로 돌아간 뫼르소는 한 아랍인이
모래밭에 누운 것을 보고 긴장한다. 햇볕이 장례식 날처럼 몹시 뜨거운 날이고,
그는 땀이 눈으로 흘러 눈이 아프면서그 작열하는 태양에 아랍인이 꺼내든 번득이는
칼이 문득 눈을 파내듯 느끼는 순간 총을 꺼내 쏘았다. 그 후 네 발을 연속으로 쏘았다.
사형선고를 받은 그에게 신부가 찾아왔으나 그는 신부가 감옥의 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 죄가 사해진다는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오직 죽음만이 그를 자유롭게하리라 주장한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당시 동국대학 철학과 교수님이시던 김인홍 교수님께서
이끄시던, 당시 미도파에 있던 국립도서관에서 모임이 있었던, 상지 독서클럽에
잠시 다닐 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열하는 태양빛에 쫓겨 살인을 한 남자의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읽으니 전후의 페허인 그때나 모든 물질이 풍요하나 또 정서나 도덕적으로
빈곤함을 경험하는 지금의 세대에도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온다.
주인공 뫼르소의 마음은 완전히 정서가 배제된, 오직 하루하루의 일상만이 삶으로
각인이 되어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삶의 의미와 사랑 등이 한 사물보다 의미가 없는
그의 심장은 돌과 같고 그것을 깨뜨리기에는 신의 사랑을 호소하는 신부도 냉철한 심판으로
죽음을 선고한 검사나 배심원들의 역량도 부족하다. 양로원에 보낸 어머니의 관 속의
마지막 얼굴을 보기를 거절하는 그의 마음은 애인 마리를 사랑하지않고 단지 육욕을
해결하는 상대로만 보는 마음과 상통한다. 마음과 가슴에 어떤 장애가 있는 모습이다.
육신의 장애는 눈에 보이지만 뫼르소와 같은 정신과 정서의 장애는 눈에 보이지않으면서
사랑과 정서가 결여된 메마른 삶을, 늘 모순과 부조리에 가득 한 이 세상에서 모든 것에
무관심하게 살았다. 애인이나 어머니에게 느껴지지않는 사랑의 마음, 태양빛에 쫓겨
총을 쏘고 죽은 시체에 다시 네발의 총탄을 더 퍼붓는 뫼르소에게 슬픔도 회개의 감정도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뫼르소에겐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죄인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자신은 남보다 좀 이르게 죽을 뿐이 아닌가. 그는 자신의 돌같은 마음을 흔들어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을지도모를 사랑과 죄의식을 이끌어내려는 신부에게 격하게 분노하여
신부를 쫓아내었다. 그러나 그 분노가 지나가고 고통이 가라앉자, 그는 생의 끝머리에서
어머니가 약혼을 한 사실을 떠올리였다. 죽음의 가까이에서 해방과 함께 다시 살아볼 마음을
어머니가 느낀 것을 이해하며 그 자신도 이 철벽과 같은 무관심에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끼며
닥아오는 죽음이 자신을 해방시켜줄 것을 마음 벅차게 기대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 젊은 이들에게 퍼져나갔던 허무주의에 덧입어 이 작품은 발표되자
극찬을 받았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