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프란츠 카프카 (1883-1924)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프라하의 전통에는 독일의 신비주의, 슬라브적인 경건과 유대인의 비교사상이
융합되어 있는 곳이다. 유대인이라는고독한 숙명은 몸이 약해 질병이 잦고 폐병으로
각혈에 시달리는 카프카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타고난 내성적 성격의 카프카는 외향적 인 아버지에게 눌리며자라 부친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문학적 소양이 있던 현모양처형의 어머니는 죽은
남동생들에 이어 태어난 세 딸들을 돌보느라 카프카는 늘 외로움 속에서 자랐다.
부친의 뜻에 따라 법학을 하고 박사를 딴 후 형사, 민사 재판소에서 일했으나
죄인을 벌주는 법의 비정한 틀이 적성에 맞지않아 그만두고 프라하에 있는 노동
재해 보험국에 취직하여 폐병으로 죽을 때까지 근무하였다. 그러나 관료행정국의
노동자에 대한 냉혹하고 비정한 대우와 노동자들이 평생 헤어나오지못하는
비참한 가난과 질병을 뼈저리게 보아야했다.
그의 작품들에는 법원과 재해보험국에서 보고 경험한 관료와 행정국의 부조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작품에는 성, 변신, 심판, 시골의사를 포함한 다수가 있다.
그는 선천적으로 허약하여 갖은 질병에 시달렸으며 만년에 후두 결핵에 걸려
언어소통에 장애가 있을 때까지 세 여자와의 사랑을 경험하였다. 첫번째 여인 펠리체와
세번의 약혼과 파혼을 거듭하며 헤어졌고 두번 째 연인인 밀레나는 유부녀였던 이유로
비련으로 끝나고 마지막 여자 도라와는 가정의 분위기를 느끼며 행복해하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으나 폐병이 깊어져감에 그녀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심판은 그의 난해한 작품세계를 잘 나타내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의 작품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비상식적이고 비일상적인 일들이 주인공의 일상을 지배한다.
은행원인, 며칠 있으면 30살이 되는 요제프 k는 아침 출근하려는 길에 두 남자에 의해
체포되었다. 체포하는 남자들과 요제프는 왜 체포하고 당하는지 서로 알지못하지만
어느 기관의 명령에 의해 체포당한다. 그는 세 명의 감시인이 붙여진채로 은행에 출근하고
일상 생활을 그대로 이어나가지만 법정의 소환의 이유를 결코 알 수 없다. 또한
그 법정의 재판이 언제까지나 진행되지도 않는다. 요제프처럼 체포당한 많은 사람들이
유죄판결을 면하기위해 각종 청원 문서를 작성하고 제출하기위해 이리저리 헤매인다.
그러나 청원은 결코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서로 소환 당하기를 거듭하지만 법정은
재판을 열지도 결코 유죄 판결을 내리지도 않고 무죄를 증명하지도 않는다.
숙부의 권유로 도움을 청한 변호사는 결코 아무런 일도 진행시키지않음으로 요제프는
위협하는 변호사를 해임한다. 은행지점장은 어느 성당에서 고객을 만나라고하여
그 곳에 갔더니 고객은 오지않고 재판정의 신부를 만나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신부가 이야기했다. 한 시골남자가 계율의 문 앞에 서서 들어가게해달라고 문지기에게
사정을 하였다. 문지기는 들어가겠다면 막지않겠지만 절대로 너는 들어갈 수 없다고
딱 잡아뗀다. 시골남자는 문 앞에 서서 기다리며 해를 거듭할 수록 돈도 기력도 떨어져
문지기 옷깃에 붙은 벼룩에게 사정을 할 지경이 되었다. 그는 죽게되어서 문지기에게
왜 문 앞에는 자기외에 다른 사람이 없냐고 묻는다. 문지기는 이 문은 단지 당신 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그는 목숨이 다해 자기 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 문 앞에서 죽어간다. 신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제프는 그동안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상급 재판소나 재판관의 존재를 떠올리며 자신의 재판이 결코 이루어지지도
자신의 판결이 결코 무죄가 되지도 않을 것을 알았다.
다음 날 찾아온 두 남자는 양쪽에서 요세프 k의 팔을 꽉 끼고 꼼짝 못하게 한뒤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 칼로서 개처럼 처형을 한다.
카프카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다 유랑하는 이방인이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사형수들이라고 판단한다.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형수들이 보이지않는 절대적인
힘에 의해 끊임없는 구속과 억압 속에서 절망하며 그 판결을 면해보려고 허둥지둥한다.
그 인간 군상들 속에서 주인공 요제프는 자신의 체포는 이유가 없고 부당하며 체포당해야
하는 죄나 운명이 자기 자신보다는 사회나 세계의 조건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결코
받아들여지지않고 더한 핍박이 닥아온다. 그는 까닭없이 구속하여 형벌처럼 여겨지는
그 힘에 의해 이리저리 난도질 당하고 처형되는 모습에서, 이세상은 처음부터 형벌지이고
어느 누구라도 그 곳으로부터의 탈출이나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카프카는 죄를 개인이 지고 책임을 지는 것이 운명이라는 전제를 하여 그 운명은 결코
면제되거나 사하여지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이 이런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원하지않았더라도 태어날 수 밖에 없었음으로 사형수로
이 세상에 태어나 형벌과도 같은 생을 부단히 살아가다가 결국은 이해할 수 없는 권력자에
의해 죽어가야 한다는 인간의 숙명을 그려놓았다. 심판은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원죄를 하나님의 아들에게 전가시키고 죄의 짐에서 놓여나며 계율의 문으로
들어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부인하고 자기의 문 앞에서 평생 기다리다가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신이 없는 자들의 잔혹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