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제목 없음

another woman 2011. 2. 23. 07:19

 

왠지 좀 살만한 것 같아  마당에 빈 곳에 마늘을 이리저리 심고나자

왠지 담벼락에 주르르 늘어놓은 화분들의 배열을 바꾸어 보고 싶었다.

어린 석류나무 화분을 쪽문 곁으로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이것 저것

식물의 모양대로 화분들을 옮겼다. 한 시간도 넘게 걸렸는데 다 하고보니

아무래도 어색하다. 다시 이리저리 옮기다보니 처음 그대로 되돌아간 것을

알았다. 그 무거운 것들을 드느라 고생하고 사이사이 흙을 파면서 으르렁

거리는 츄이를 말리느라 기운이 다 빠졌는데 애만 썼지 처음과 같은 배열을

보고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는 십여년 개업을 하자,  왠지 자기 일에 만족을 못하고 힘들어하며

뭔가 궁리를 하다가 이민을 오고 이십 여년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였다.

이민 생활이란 것이 공은 공대로 들이고 성과는 미진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의식도 못한 사이에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가버린

지점에 오니, 서울처럼 기를 쓰고 뭔가 시키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탈없이

자라준것 외에 내세울 것이 없는 허무가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이 십여년을 보낸 후 그가 한 말은 그래도 역시 치과가 천직이있어라고

말하더니,  매년 한번씩 치과 선교를 갔었고 오늘 이 자리에 까지 오게

되었다. 맴을 돌며 헤매어도 결국은 돌아가지않는 그 처음의 자리는 화분처럼

배열을 바꾼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되돌아가기도 어렵다. 감정이나

깊은 생각없이 생의 자리를 이리저리 바꾸어보니 단 일회성의  삶의 어떤

진지성과  엄격성이 느껴진다.

 

처음 주어진 자기 일이나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그 처음 일이나 그 자리가 자기에게 가장 합당하고 맞는

자리였다는  것을 알게되는 시점이 뭔가 다시 시도를 할 기운도 의욕도

없어질 즈음이라는 것이 동남아 음식을 먹을 때 처음 고수를 씹듯이  씁쓸하다.

그러나  계획은 사람이 세워도 인도하시는 그 분을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

이 일이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슈퍼맘 블로그에서 읽은 글인데 톨스토이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세 가지 란 글이 생각난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지금 대하고 있는 사람,

지금 이 시간.

 

이 세가지를 언제나 우선 순위를 두고 충실히 살아왔다면 값진

인생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