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
1908년 3살이 된 푸이는 청조 제 12대 황제로 등극하게 되었다.
사진의 노란카디건을 입은 아이의 나이만 하였다. 찢어진 눈에 변발을
하고 비단옷을 입은 것만 달랐을뿐 메뚜기를 가지고 놀던 어린 아이였다.
그를 황제로 추천한 서태후는 곧 서거하였고 즉위 3년 째 일어난
신해혁명으로 중국 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자금성에 연금 상태로 내시들에 둘려싸여 생활하다 14살 되던 해에
레지날드 존스턴이란 영국인이 가정교사로 와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완용과 결혼하고 또 한 명의 다른 아내를 두고 지내며 영국으로 유학갈
꿈을 가지고 있었다. 동생이 와서 함께 지내던 중 동생은 그에게 너는
더이상 왕이 아니고 성 밖에 대통령이란 왕이 있다고 소리쳐서,
퓨이는 자금성 담장 밖을 내다보며 뭔가 세상이 달라졌다고 느끼며,
그의 비극은 시작되고 있었다. 어머니같던 유모도 강제적으로 출궁되고
그는 자신이 오직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내시들에게만 왕인 것을 알았다.
1924년 군사구테타로 일본의 보호 아래로 들어갔다. 퓨이는 유학을 가려다가
만주국의 황제로 등극하기로 결심하여 만주로 가서 황제가 되나, 그것은
껍질 뿐 아무런 권한이나 위엄이 없었다. 그는 풍부한 자원이 많은 만주를
지키고 강성한 나라를 만들어 일본에게 저항할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관리들은 일본인의 말에 복종하고 그를 왕따 시키고 경멸하였다.
왕인 남편과 왕비인 자신이 아무 권리 없이 일본인에게 지배받는 신세가
슬픈, 아내 완용은 일본인의 내연의 처인 친구에게서 아편을 배우고, 또
그녀가 자신을 성적으로 농락하게 버려둔다. 아편 중독이 되어 퓨이에게서
버림받은 그녀는 자신의 운전사의 아이를 낳아 퓨이의 후계자라고 주장하나
일본인은 아이를 살해하고 그 아이의 아빠인 운전사도 죽인다. 그 후
왕비 완용을 어디론가 데리고가서 감금시킨다. 일본이 항복한 후 나타난
완용은 완전히 폐인이 되어 퓨이도 알아보지못하고 퓨이는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전범으로 몰려서 전범 800명 속에 섞여 감옥에 간다.
그는 자살시도가 실패되자 수인번호 981번을 달고 자기 비판서를 당국의
요구대로 몇 번이고 괴로움을 당하며 수정해 쓰고 10년의 징역언도를 받았다.
왕이란 자존감의 한없는 추락과 자기 환멸의 과정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져갔다. 내려감과 내려감의 연속으로 자아비판과 감옥의 생활을 거치며
그의 얼굴은 달관을 이루며 겸허한 평강의 눈빛으로 조심히 주위를 바라보는
그, 구두끈도 스스로 매지못하던 그는 각종 학대와 비판을 받으면서 10여년을
보내고 출국하자 정원사가 되어 목숨을 연명하였다. 어느 날 거리에서
붉은 스카프들을 맨 젊은 혁명군들 홍익군들에게 두 손을 묶이어 거리를
배회하며 무릎을 꿇고 사죄를 강요받는 전 정부 관리들 틈에서 자신의
자백서를 검토하던 관리를 보고 홍익군에게 그의 무죄를 애걸하다가
쫓겨나고 자금성으로 가서 자신이 어린 3 살 때 앉아 황제의 노릇을 하던
그 왕좌를 바라본다. 그는 1968년에 쓸쓸히 죽었다고 한다.
시대를 잘못 만난 탓으로 왕이었지만 왕의 역활을 해보지못하고 이름만
왕이었던 퓨이의 슬픈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영친왕 생각이 났었다.
자신의 의지나 생각대로 아무 것도 해보지못하고 환경과 권력에 눌려
일평생 허수아비로 지냈고, 시국의 희생양이면서도 전범으로 몰려
인생의 밑바닥을 전전하던 마지막 황제의 모진 풍파를 달관한듯한
잔잔하고 평강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