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이 분다. 저 남극 거대한 얼음 산들을 돌아돌아 기세좋게
몰아쳐서 대양을 가로질러 해변을 지나 도시를 가로질러 열대회귀선을
향하여 마지막 열정을 더해가는 바람의 정열이 부러워진다.
지금까지의 나날에서 한번이라도 저렇게 휩쓸어가며 마음이 가는 곳으로
기세좋게 몰아쳐가본 적이 있을까. 바람은 나뭇잎들을 못견디게 흔들며
지나가곤 다시 온다. 나뭇잎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잎들을 떨구며
조용히 순종하나 바람은 떨어지는 그 잎들을 이리저리 휩쓸고 지나간다.
가슴 속에 든 마음이란 것은 바람을 좇아서 세상이 좁다고 이리저리
함께 휩쓸려다닌다. 광풍을 좇는 마음이 다스려지지않아서 밤새
불어대는 바람을 따라 사막과 평원과 바다 위를 함께 피곤하게 달려간다.
사는 곳을 바다를 건너며 몇 번 옮겨다니고 알던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도 부는 바람처럼 여겨진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곁에 있으면서 탑을 쌓지못하고, 한참 격조하고 만난 후는 헤어져있던
그 기간만큼 틈이 생겨있고 그 틈에서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있는 민들레처럼
정답지만 어쩐지 모르게 네가 등을 돌렸거나 서로 등을 돌렸거나 서로를
길가에 구르는 낙엽처럼 놓아두고 바람은 다시 불어간다. 정처없이 가면서
만나는 새 도시 어쩐지 낯익으나 처음인 숲들, 강들, 바다를 지나면서 언젠가
이 곳을 지나가지않았던가 이런 상황을 언젠가 격었던 것은 아닐까, 생은
혼돈 속에서 유한한 육체의 망각하는 습성으로 언제인지 지났던 길들을
겪었던 일들을 새 것처럼 착각하며 한 세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부단히 살아가고있는 자신이 스스로 민망스러워지고 이 곳을
지나가면서 어떤 나무를 지나치게 흔들어 미처 물들지도 않은 잎들을
처연히 떨구고 지나쳤을까. 그 떨군 초록이 아직 진하여지지않은
나뭇잎 속에 든 진한 원색으로 물이 들 단풍들을 마음 아프게 단념하고
가로수 보도 위를 구르며 스스로 소진해가는 것은 아닐까.
바람이 못견디게 부는 날은 돌아보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