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그리기
요즘은 수채화에 눈길이 간다. 블로그를 보다가 수채화를 보면 자세히 보다가
한번 그려봐야지 생각해본다. 그림이라곤 평생 그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종암 국민학교 시절 사학년 때인가 학교와 가깝던 개운사가 있던 산에 사생대회에
갔다가 그렸던, 크레파스 그림이 오래 교실 뒷면 벽에 붙여있었던 생각이 난다.
주변 나무의 짙은 초록과 절 기둥을 흙빛이 작은 도화지를 꽉 채웠던 모습
그 짙은 크레파스 색갈이 실루엣으로 눈시울에 남아있다.
엣날에는 수채화를 그릴 때 제일 밑에 한 색갈로 도화지를 다 칠한 후에
그림을 그렸다고한다. 그 위에 여러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칠하고 칠하여
그림을 완성해갔다고 한다. 수채화를 보고 있으니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성품 제일 깊은 바닥에 수채화의 밑칠처럼 죄성이 깔려있다.
그 운명적인 죄성이 주는 비애와 슬픔이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깔린 도화지 위로
한 사람이 살아나가는 생은 연속적인 그림의 집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그림들에는 어른이 되어가며 삶의 애환이 피부에 문신처럼 조각되면서
때로 죄로 밑칠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숙명적인 비애와 슬픔이 떠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라도 피해가지 못하는 그들의 생의 도화지에
복사꽃이 만발한 과수원이나 매화꽃이 휘날리는 동네, 아무리 흥겨운 잔칫집을
그리더라도 세월이 가면 죽어갈 수 밖에 없는, 바람에 흐르르 낙화할 수 밖에
없는 엷은 슬픔과 비애가, 목숨을 지닌 사물들의 숙명적인 슬픔이 있다.
아무리 인격이 있어도 자기도 모르게 어둠으로 가까이, 슬며시 끌려가버리는
그런 비애가 있다. 깊은 밤 눈을 뜨고 눈시울 가득히 어둠을 담는 순간 수만길
낭떨어지로 떨어지듯, 햇빛 찬란한 오후 적요만 가득한 잡풀이 가득 난폭히
자란 뜰을 바라보며 왠지 마음이 메어져오는, 피해가지 못하는 존재의 함정들,
그런 것들이 무슨 색으로 칠해질까.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로 자신의 일생을 채색한다고 하여도 결국은 본질의
흰색이나 검은색을 피해가지못하는, 갖가지 색으로 그려진, 덧칠이 마구 칠해져
어줍은 그림이 되어버린, 자신의 일생의 수채화 한장으로 절대자 앞에 서는
날이 저만치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