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대하여
헬렌 켈러 여사가 평생 소원이 3일만 눈을 볼 수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은 제일 처음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는 것, 해가 떠오르는 것, 석양이 지는 것, 꽃들이 활짝 핀 모습을 보는 것,
도시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을 보는 것, 영화를 감상하는 들을 해보고 다시 눈이
안보여도 괜찮겠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왠지 무엇엔가 한대 맞은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매일같이 숨쉬는 공기나 마시는 물에 아무런 감사나 감동을 하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평생 한번만 보았으면, 정말 마음이 터지도록 주위 사물들을 보고싶지만 늘 어두운 밤만을
살아가야하는 시력장애인인 헬렌 여사에게는 간절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맞이하는 상쾌한 새벽빛을, 박명이 걷혀가며 서서히 스며들듯 밝아오는 푸른
하늘을 아무런 감동없이 바라볼 뿐더러 때론 무의식의 어느 어두운 지층에서 스며있다가 불현듯
떠올르는 지난 날의 언짢은 기억들로 인해 어디엔가 눌린 가슴으로 아침을 맞기가 예사입니다.
주어지고 가지고있는 것들은 너무 당연하여 하찮게 여겨지고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손 안에
잡히지않는 그런 것들로 심정을 어지럽히는 자신의 모습을 눈 앞에 있는 숲을 바라보듯이
바라보고 있으면 왠일인지 자신이 지닌 연약에 어쩌지 못하고 휘둘리는 모습에 연민이 느낍니다.
때때로 출구가 없는 함정에 갇힌듯한 그런 분위기를 한동안 떨치지못해 아침에 눈을 뜨면
어딘가 눌려있고 잠이 들기까지 하루내내 눌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 일들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에 18세기 러시아 화가들이 그렸던 잿빛 하늘에 잿빛의 무표정이나 음울과 괴로운
얼굴을 낡은 긴 검은외투에 파묻고 얼어붙은 동토를 발을 끌며 시베리아 감옥으로 끌려가는
죄수들의 행열이 겹쳐 떠오릅니다. 발을 질질 끌며 어깨에 걸린 짐의 무게에 눌리며 한숨조차
가슴 속에 고여둔 채 살아가는 인생들이라니.
현재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인간관계들은 너무 당연하고 더 가져야하고 더 누려야함으로
쉼이 없이 지금의 순간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더나은 곳이라 생각되면, 저 곳에 뭔가
있으리라고 생각되면, 무지개를 손에 잡기위해 산과 들을 방황하며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던
소녀 소년들은 어느 사이에 머리에 흰색을 서리서리이고 눈물이 고이고 약해진 시력으로 반쯤은
눈을 감은듯 어느 지점에 멈추어서 이제는 어디로 가야할까,
지난 날 꿈꾸었던 것들의 미련으로 반 화석이 되어 서서 지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쫓아다니며
헤매었는지조차 애매해진채 하염없이 그 어느 곳을 바라볼 것입니다. 작은 꽃 하나를 보아도
헬렌켈러 여사의 시선처럼 가슴에 기쁨과 놀람과 감사가 충만하여 바라볼 수 있다면
창조주께서 죄가 관영된 세상이지만 은혜로 깃들게하신
이 세상의 천국을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