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늦 가을 외출

another woman 2013. 6. 21. 07:09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남극의 얼음 세상에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바람이 부는 날이면 더욱 춥다. 이 곳에 정착한 초기에는 겨울에도 장미와 동백들이 

만발한 동네라서 꽃이 피는데 겨울이라니하면서 겨울을 좀 얕잡아 보았었다. 

그러나 왠일인지 해가 더할 수록 꽃들은 피어도 완전히 돌아선 연인처럼 새꼬롬한 겨울날들은, 

더구나 바람이 불어제키는 날은 왠지 오금을 펴지못할 정도로 어깨가 움추려들게 추워서

단지 모습만 다를뿐 완전한 나목들의 행열에 눈이 펑펑나리는 서울의 겨울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갑갑해하셔 하루 날잡아 외출하였다.

그러나 걷는 것이 자유롭지가 않으셔 차로 이동하고 카페에 가는 것이 고작이다.

티포트만 수집하여 진열하고 파는 카페인데 손님들은 주로 노인 분들이다. 양로원에서

셔틀 버스로 단체로 와서  차를 마시고 각가지 모양의 커피 주전자들을 구경한다.

골동품이 즐비한 가게 안에 늙고 주름 진 은발의 노인들을 보는 것은 왠지 연민이 생긴다.

청년들이 올 이유가 없는 가게이고 주로 노인분들이 손님이지만 바람부는 쓸쓸한 

가을 날 은발의 노인들이 힘없는 시선으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한없이

앉아있는 것을 보며 왠일인지 등이 시려왔다. 나이가 든다는 것.

더이상 만들 추억보다 지금껏 살아온 나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작고 큰 회한조차 매달릴

힘이 사라져버렸다.  다만 일생이란 기차를 타고 지나온 어느 간이역의 한 장면처럼 회상으로 

남을뿐 온갖 정열이 잦아든 가슴에 추위로 체온이 내려간 햇살이 기운없이 내리쬐는 안뜰처럼

적요하기만하다. 몇 대의 손길로 차를 마련하여주던 비싸고 귀한 티포트는 세월이 더한만큼

자신의 가치도 올라가있다.  백여년 전 작품인 손바닥 만한 크기의 야외숲을 그린 수채화도 

해가 지날 수록 몸값을 올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름진 얼굴에 광채를 잃고 가족과 친구들을 잃고

기억을 잃고 황혼녁의 가을 햇살처럼 빠르게 사위워간다. 그러나 온기를 잃은 햇살이라도

아직은 뜰 한 쪽에 남아있는 이 시간이 귀하고 은총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아직은 그 분의 은혜의 온기가 남아있는 시간, 

이윽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마지막 햇살이 거두어지기 전까지는.


이 날은 점점 아이처럼 작아져가시나 여전히 씩씩하게 자신을 단도리하시는 어머니도 아버지 

생각이  나시는지 침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