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바위
사람이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모양새인지 왓슨만의 한 부분인 이 곳에도 자살바위가 있습니다.
항상 군중들이 흘러다니는 곳, 치열하고 때론 치욕적인 삶들이 습기찬 바닷가 바위의이끼처럼
널려있는 곳, 그런 시내의 중앙이 바라다보이는 곳입니다. 활발하고 긍정적 부정적 생들이 충만한
시내를 내려다보며 죽음에 사로잡혀 번민하며 이 곳에서 뛰어내린 목숨들에게 저 표지판들은
과연 도움이 되었을까, 절망에 잠긴 마음 속에 저 푸르른 바다가 어서 와서 내 품에서 평강을
누리라고 손짓할 때 과연 저 표지판들은 도움이 되었을까 잠시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뭔가 절박한 막다른 일을 저지르기 전에 누군가가 마음에 있는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그 처지와 마음을 이해하며 공감하여 준다면 다시 한번 살아보고자하는 마음이 들것도 같습니다.
세계에서 자살왕국의 상위권에 들어선 서울에도 마포대교에 생명의 전화가 설치되었다지요.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사람의 용기는 참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막다른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절망의 힘의 억제 못하는 막강함이 느껴집니다. 마음을 잠시만 돌이킨다면 그 힘으로 살아보려고
마음 먹는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를 실감 못하지만, 마음을 한 줄기
빛만큼만 돌이킨다면 살아갈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장면에 부딪치면 생각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유대인 가스실에서 살아남아 시체들이 자신의 몸 위에 쌓였었지만
언뜻 눈에 들어온 파아란 하늘이 얼마나 아름답고 살아있어 그 하늘을 바라 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는 유태인 정신과 박사 빅터 프랭클 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그에게 건네진 죄수복 안에 네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
적힌 쪽지를 읽자 마음에 꼭 살아서 하나님의 그 창조물에게 목적하신 삶을 살자는 희망이 솟아올라
살기위해 자신을 잘 돌보아 외모가 건강해보여 가스실행을 면하게 되고 결국은 살아남아 정신과의사로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또 한 사람은 오래 전 추운 겨울 종로 3가
지하철 입구에 누워있던 노숙자입니다. 이십대 후반인듯 싶은 그 청년은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있었는데 맑고 파란 하늘을 눈동자에 담자 피어오르던 아름다운 미소는 그의
씻지않은 얼굴을 빛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역 계단을 내려왔으나
그의 선한 눈동자 안에서 빛나 온 얼굴을 평화롭게 만들던 그 미소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그는 지금 어떤 처지에서도 살아가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처한 환경에서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이 곳에 머물다 갑니다.
차라리 수용소의 그 처절한 절박함 속에서 하나님을 믿기가 절실했었지, 요즈음 세상에 정말 창조주의
사랑을 느끼기 쉽지않지만 징조가 없더라도 환경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말씀처럼 네 마음과 뜻을 다하여
창조주를 사랑한다면 희망을 잃지않고 살아갈 수있는 기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표지판이 그 누군가의 마음을 다시 한번 돌이킬 수 있는 힘이 있기를 소원하며
이 곳을 지나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