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호박덩굴
another woman
2014. 2. 8. 07:43
오늘 호박덩굴을 걷었다. 아주 무성하고 진초록의 싱싱하고 거센 그것들을 까칠한
잎들에 피부가 아파가며 걷어내었다. 이 곳의 호박들은 모양은 작고 이쁘나 전혀 호박 맛이
안나고 때론 쓰기까지하다. 부지런한 한국 분들은 조선 호박을 심어서 호박을 딴다. 그동안
어머니에게서 여름마다 몇 개씩 주셔서 귀하게 여기다, 올해 여름엔 주신 호박씨를 심고 몇뿌리가
생겨 제일 실한 뿌리 두 개만 남겼다. 그것들은 너무 너무 잘자라고 잎들이 커다란 연처럼 넓어져서
호박 잎을 머리에 쓰고 하나님께 불평했다는 선지자 요나가 생각날 지경이었다.
아 이렇게 넓은 잎이 였겠지.
그러나 처음 몇 달은 숫꽃들만 무성하고 도무지 암꽃이 피지않았다. 호박을 따서 이런 것 저런 것
만들어야지 생각했었는데 너무 섭섭하여 호박꽃을 따서 꽃술을 따내버리고 그 곳에 고기와 감자
숙주 향신 야채들을 섞어서 빵가루를 입혀 튀겼더니 별미라고들 하여 좀 섭섭함이 없어졌었다.
여름내내 무성히 어린 순들이 뻗어나고 아주 실하게 생긴 암꽃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저 생겼다가 전혀 커지지않고 이 주 정도 지나면 노랗게 말라 떨어져버렸다.
어쩌다 하나 피어서 접해주어도 골프 공만해지더니 아무리 밤과 낮이 지나가도 커지지않았다.
어머니께 의논하니 가을철 호박도 제법 맺히니 그냥 두라하셨으나 아무리 보아도 열매가 맺히는
땅이 아니거나 호박줄기가 아닌듯하다. 처음에는 그저 푸르름에 위로를 받아도 되었었던 것이
결실을 맺지못하는 그 모습이 왠일인지 민망하여지기 시작하였다.
호박덩굴을 걷어내면서 왠지 하늘의 창조주께서도 별 열매가 없는 나의 삶을 연민이 어려서
민망하게 여기지는 않으실까, 혼자서 마음이 서성여지던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