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에게 지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아이 대답이 사방에 엄마가 있는거라로
답했다는 말이있다. 우스개 수준의 답이지만 그애들 편에서
보면 사실이기도하다. 그러나 엄마의 편에서 보면 요즈음은 유해식품 문제,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 소세지 콜라 각종 멜라닌 과자 등을 안먹이는 것부터
인터넷이나 피시방 게임방 왕따나 길가의 나쁜 형들이나 등의 해로운
것들로부터 아이를 지키기위해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십분이라도
게임을 더하고 싶고 십분이라도 더 자고 싶지만 늘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하지말라 하는 것이 늘 주위에 맴도는 엄마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들은 엄마 편에서 보면
금지시켜야 되는 것들이 많으니 자기 하고싶은 것을 참을 줄 모르는
요새 자녀들과 자연히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커져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고 3이 있는 집에 저녁 시간에 전화를 걸면 큰 실례가 될 정도로
아이들을 고이 모시며 그저 공부만 시켜야하는 서울의 실정을
탓하는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요즈음의 아이들의 이기적인 성정은
부모에게 요구사항은 많아지면서도 자신을 간섭하는 것은 싫어하여
아이와 갈등하게되는데, 자기들이 좋아하는 부분만 취하겠다는 것이니
의무는 싫고 권리만 취하겠다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부모가 볼 때는 주로 해롭고 덕이 안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설사 알더라도 그 해로운 것들이 여전히 좋고 하고싶어서 반항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이 아이들의 모습이 꼭 창조주를 대하는 내 마음을 닮아있는
것을깨닫게 되어 겸연적어지지만 후세가 될 이 아이들에게 연민이 생긴다.
자연은 받은 만큼 돌려주기때문에 자연에 어긋나는 법칙에 그에 합하는
수준으로 우리에게 돌려준다. 기인에 속하겠지만 곧 올 이 땅의 재앙에서
살아남기위해 지금부터 단양의 어느 곳에서 문명이 단절되어도 살아남을
것을 대비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우리가 더럽힌 땅들이 지구 온난화와
땅의 산성화등 여러가지 재난으로 우리에게로 되돌아오듯이 아이들의
문제도 비슷하다. 부모의 본능적인 사랑의 방법 중 어떤 것들은
어긋난 사랑으로서 물질이나 현시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내면의 아이들의 본성을 해하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의도는 안그랬지만 결과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돌아온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아이는 견고한 성처럼 이기심와 자기의 육신의
소원에 집중하고 있어 주위와 갈등을 빚게되게 된다.
이쁜 딸을 얻으신 분께 유아복을 선물하려는데 명품을 사야된다는
의논이 많아 결국은 백화점 상품권으로 대체를 하였다. 아이는
금방 자라는데 왜 꼭 이름있는 브랜드래야 되는지 아마 선물이니
그렇겠지하고 이해하였다. 초등학교에서도 같은 옷을 이틀 입고가면
자기들끼리 흉보고 백화점 옷인지 시장 옷인지도 잘 알아맞추어
시장 옷을 사주는 엄마는 아이에게 미안함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아는 분이 세째 딸이 세번째 손녀를 낳아 산후조리를 해주시는데
첫째, 둘째 손녀가 너무 버릇이 없어 말릴라치면 사위가 대놓고
싫어하여 기쁨으로 산후조리를 해주시다가 시험에 드는 것을 보았다.
부모보다 자식이 소중한 것은 내리사랑이라 어쩌지못하겠지만 버릇이
없는 것도 방관하는 사랑은 아이에게도 해로운 사랑이다.
아이들을 이기적으로 길러놓으면 자란 그 아이가 자기 마음대로
뭔가 돌아가지않으면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의 화살은 먼저 부모에게로
향하게 된다. 부모들이 자기 발등을 찍은 결과가 된 부분이다.
요즈음의 복잡한 사회구조로 가능하지않겠지만 옛날의 대가족제도는
집안에 계시는 할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사랑하면서 가족들끼리 돕고
양보하고 하는 것을 몸으로 배워지는 좋은 터전이었던 것 같다.
오늘 날 집집마다 하나둘씩 있는 아이들이 혼자서 컴퓨터와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그런 것은 체험할 수가 없고 그저 게임이나 티비로서
어리고 부드러운 그들의 영혼들이 강팍해져갈 뿐이다.
남들 하는 대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교육현장을
감당할 자신도 없고 자신이 부모의 세대처럼 별 희생하고 싶지도
않아서 결혼을 기피하거나 결혼하여도 아이를 낳지않는다. 또
둘이서 열심히 벌어도 살기 만만치않아서 낳지못할 수도 있다.
요즈음은 문명이 너무 발달하고 인성이 파괴되어 창조주의 자리를
서슴없이 도전하는 사회에서 바른 신앙을 지키기가 참으로 어렵다.
많은 신앙인들의 왜곡된 모습과 사람들의 자기도 어쩌지못하는
강팍함을 가지고 신앙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대이지만,
그러나 특별히 그 어린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키워야될 필요가 있다.
신앙 안에서 바로 자란 아이는 그 자신이 늠늠하게 이 세상에서
살아갈수 있도록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듬어간다.
그 길이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살리는 길이다.
창조주는 번성하고 번창하라고 명령하셨다. 우리나라 옛말에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갖고 태어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먹고만 살수 있는
세대가 아닌 오늘 날 자연을 회복해야지만 이 지구가 지켜지듯이
오염된 우리들의 영혼과 인성도 옛 조상들이 가졌던 지혜와 창조주가
사람을 창조할 당시 그 마음에 뜻하셨던 그대로 회복되어야지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진정으로 회귀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