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말없이 묵묵히 흐른다. 바다처럼 쉴새없이 파도가 치지않는다.
그 그득한 물은 소리없이 강을 가득히 메우고 정지한듯 보이지만 흐르고
흘러서 언젠가 먼 바다에 도착한다. 새벽녘이나 어스름이 내려앉는 시각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먼산 저쪽부터 안개가 슬며시 스며들어오면 길가의
나무들이나 풀들이나 길을 걷는 산책하는 사람들마저 액자 속의 풍경화의
일부가 되어간다.
깊은 산 계곡의 보일듯말듯 흐르던 물이 산골짜기로 흘러들어 강의 작은 지류와
만나 시내를 이루고 시냇물은 흐르고 흘러 강으로 스며들어 강물이 된다.
어린 지류일 때 경사진 바위들 틈으로 소리를 내며 급하게 흘렀고 시냇물에
도착해서 마음대로 좔좔 흐르며 주위의 사물들과 함께 갔다. 그러나 강에
스며들고는 깊은 곳에 물고기나 수초를 기르며 강에 배를 띄우며 천천히
흘러간다. 멀리서 보면 그냥 호수 같은 강이다.
어린 시절 시간만 나면 동네 골목으로 뛰어나와 놀기에 바쁘던 어린아이와 친한
단짝이 필요해지며 책을 손에서 놓지않고 센치한 무드에 섬약하기만하던
그런 시절도 지나고 상대를 만나고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무턱대고 열심을 내던 젊은 시절도 지나갔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곁을 떠나
자기들의 생을 꾸리며 강의 초입에 들어선다. 그들을 바라보며 바다와 합류할
지점으로 흘러가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가끔 생긴다.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등떼어 밀리며 살아가던 숨차던 생활이 지나가고
여전히 흘러가야될 물길이 남았지만 가끔 강물은 흘러가다말고 그 흐름을
멈추어서서 표면에 물안개를 안타까이 피워올리며 지금까지 지나온 흐름의
물길을 향해 고개를 돌려 뒤돌아 보는 것이다.
강물이 잠시 멈추어 망설이며 물안개를 피워오르는 동안 자신들 속의 또다른
우리들은 그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 흐름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가
그 일들의 사정은 어땠으며 결국 어디로 향했던가, 그 지난 날들이 꿈 속의
여러 장면들 처럼 여겨져 고개돌려 뒤에 남겨진 그 사연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며 강가를 걷게 된다. 흐르는 자신 옆에서 걸어가며
그 자신을 잠시 바라보며 자신의 정체를 새삼 발견해 보는 것이다.
지나가버린 가을 탓에 시든 잎새를 떨구고 지난 여름의 화려한 원색이
갈색으로 쪼그라져 말라붙은 꽃잎에 아직 조금 남은 길가의 꽃들의
죽음이나 낙화를 바라보며 메마른 가지들에 아름다운 보라빛으로 매달린
작은 열매들을 바라보며 회상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강가 둔덕의 꽃들이 만개하여 활짝 웃어대고 풀들이 초록으로 힘차게
물이올라 키가 쑥쑥 자라던 그런 여름이 분명 수없이 지나갔을지라도
사람의 기억은 무언가 아쉬운 지점에서 멈추어 서서 그일을 분석하고
이랬다면 저랬다면하고, 아무리 궁리해도 결국은 헛된 일이 될
마음의 난무를 때로는 강가에 살그머니 오르는 물안개처럼 피어올린다.
그 여정 어느 지점들에서 여러번 너무 엉키었던 수초 등이나 자신의
어리석음 등으로 인생의 흐름이 원만치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과 회한으로
강물을 바라보는 발걸음이 무거울지라도 강물은 아름답고 좋은 기억이나
슬프고 아쉬움이 남은 기억들 모두를 한팔에 정겹게 껴안고 계속,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안타까이 흐르고 흘러서 바다를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