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어느 모임에서 지금까지 생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일 중의 하나로
첫키스의 추억 이라니 호응이 많았다고한다. 오래전 이십 대 초반 착하고
잘 생긴 그가 데이트를 하러나가던 멋진 모습이 기억난다.
지나간 기억들은 절벽에 층층히 지층을 쌓아올리듯 쌓이는 것도 기억나는
것도 아닌듯하다. 언뜻언뜻 단편적으로 연령대에 상관없이 쌓였거나
뇌의 어느 부분 망각의 지대에 머물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오는
비수처럼 기억하는 것들은 때론 가슴을 치며 뒤흔드는 기억들이 있다.
정열이란 가슴 속에서 맹렬하게 일어나는 적극적인 감성이며 억누르기
힘든 열정이라고 한다. 정열이나 열정이라면 청춘들의 특권으로 여겨지나
살아가는 도정에 갑자기 그런 것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상황이 어울리지않게 오거나 성격 탓이거나 하여
모처럼 찾아오는 열정, 정열을 가슴 속에만 가두어두고 밤낮으로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갈바를 몰라 헤매이는 일엽편주처럼 흔들릴 때가
있다. 그러나 왠일인지 자기의 몸 안인 가슴 속은 푹 안아줄 수 없는,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치외법권의 지대이다. 얼굴 살이 빠져가며
말없이 시달리다가 가슴이 지쳐서 잠시 휴전을 원할 때가 있다.
그래도 모르는척 변함없이 영위되는 일상이 차라리 피난처가
된다. 모든 것은 바람이 불어오듯이 바람이 불어가듯이 지나간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듯 이런 알 수 없는 습격은 지나가기를,
그 때까지 눈을 크게 뜨고 기다리면 된다.
위로받지 못한 가슴, 그 속에서 용솟음 치던 정열은 검고 구멍이
숭숭 뚫린 화석이 되어 마음 그 어느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정체된,
딱딱하게 만져지는 감정들이 어느 고인돌처럼 화석으로 굳어도,
그래도 세월은 잘도 가더라.
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치의 사람 마음 속은 모른다더니 자기의
마음이라도 자기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비오는 날 신경통
통증처럼 가슴 속 화석이 살아있는 작은 동물인듯 움찔 되살아나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그 열정이 다시금 스스로 지칠 때까지
창 밖 멀리, 해변 멀리 절대 도착할 수 없는 그 곳을 향하여그저 휘날리는
깃발을 바라보듯이 흔들리는 팜나무 잎들을 가만히 바라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