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방문 중인 그에게서 다행히 아버님이 의식을 찾으셨다는 기별이 왔다.
최악을 각오하고 갔으니 천만다행이지만 다음 주에는 돌아와야하는 그의 마음의
괴로움이 헤아려진다. 이십 년이 넘는 외국생활과 신대원의 기숙사 생활, 모든
과정이 끝난후에는 오년의 서원을 지켜야한다며 또 몇 년을 외국으로 떠돌았었다.
정작 아버님은 연세가 들어가실수록 큰아들을 곁에 두고 싶어하셔, 왜 안오느냐,
아버지 이번에는 빨리 들어가지 못합니다. 통화를 끝으로 식사를 못하신다더니,
생리적으로는 음식을 삼키는 기관에 중풍이 생겼다고, 식음을 전폐하시고
의식불명에 들어가셨다.
그의 사역을 제외하고 여행으로 이방의 대지를 이리저리 서성이고 강행군을 할 때
마음에 와닿는 것은 이렇게 낯선 곳에서 헤매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핏줄이 있고 친구가 있고 서로를 알고 지낸지 오래되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사는 것이 좋지않은가. 마사이 족들의 숲 속에 킬리만자로가 보이는
곳으로만 창을 내고 인가가 있는 쪽은 벽으로 폐쇄한 오두막을 짓고 은둔하는
그 여자가 생각이 난다. 인연들 속에 있어도 외로운 것이 우리들 본연의 운명일
진대 이역만리 굴같은 처소를 짓고 숨어있어도 얽히고 섥힌 인연들이 과연
끊어지거나 연기처럼 사라질 것인가. 그러나 그녀의 사역이 그 가시나무
투성이의 그 사막에 아름다운 불타디 붉은 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를 바란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동안도 세월은 쉬지않고 자기의 행보를 조금도
양보하지않으며 흘러갔다. 자기의 말만 하고 자기의 생각만 하는 생리에
보는 것이 정이라던가 보지않는 동안에 쌓인 서로의 서먹함이나 자기를
먼저 이해하고 살펴주기를 바라는 무의식 중의 굽혀지지않는 의견들은
그동안 쌍인 균열의 존재를 보여준다.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그 어리석은
길을 벗어나지않는 나와 상대의 아집과 지혜없음이 서글프다. 아무래도
유수같이 흘러갈 세월이 더 필요한가보다.
그러나 가족이나 부모, 형제들은 오해를 뛰어넘는 관계를 지속하며, 쌓인
오해와 서먹함이 있어도 남들처럼 등을 돌리며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큰 일
앞에 서로 뭉쳐지는 것은 아무래도 피를 나눈 가족들에게 허락된 은혜인 것같다.
엘리어트는 안개 자욱한 새벽 런던 다리 위를 서성이는 수없이 많은 망령들을
보며 그들이 지상에서 마무리 짓지못한 일이나 미련 때문에 다리를 건너지못하고
서성이는 그들을 탄식하였다. 우리들은 너나 할 것없이 메마르기 짝이 없는 거대한
세월의 손길에 떠밀리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다리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우리들보다 몇 걸음 앞서서 그 분의 품을 향하여 피안의 세계로 통하는 다리를
향하고있는 아버님의 영혼의 평강을 위해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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