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친구에게서 딸 결혼시키려 미국 가있는 열이틀 동안 개 두마리 맡아줄 수
없냐는 전화를 받았다. 손바닥만한 마당에 사이즈도 작지않은 개 두 마리 자신이 없어
집에 하루에 한번씩 가보면서 봐주겠다니 그것은 집 근처 사는 유학생 부부가 할 수
있다고 걱정말라고 대답하였다. 이제 결혼식하고 온지도 얼마되었을 시간이라 궁금하여
전화해보니 틱으로 개 한 마리가 죽었다고 한다. 유럽에 있던 딸이 집에 와서 미국으로
가기 전 날 공원에 산보시켰는데 그 때 틱이 공격한것이라 한다. 주인집 딸이 그래서
유학생 부부는 책임감은 면했는지 몰라도 마음은 편하지않았을 것 같다. 개를 맡기
어렵다고한 내 마음이 죄책감 같은 것이 들기 때문이다. 한 마리는 비글이고 한 마리는
푸들과 섞인 종자라 하던데 우리 추이는 미니 푸들과 시츄의 모습으로 작으나 그 집
개는 정상 푸들 사이즈였던 것을 빼고 츄이와 모습이나 하는 짓이 비슷하여 눈길이
갔던 개였다. 정이 많은 친구는 무척 속이 상했나본데 이해가 되었다.
틱이란 것은 빈대 만한 작은 벌레인데 열에 민감하여 나무나 숲 속 풀에 붙어있다가
열을 느끼면 튀어올라 달라붙는다고 한다. 얼마나 흡인력이 강한지 한번 붙으면
떨어지지않고 핀셋 등을 이용하여 떼어내고 그 뒤 휴유증도 심하다고 한다. 사흘 만에
큰 개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그 벌레의 독성이 대단하다. 피부에 한번 붙으면 꽉
달라붙어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며 잘 떨어지지않고 억지로 떼어내면 머리 부분이
잘라져서 그대로 문 채로 남아있다고한다. 그 개는 첫날 안 먹고 비실거리다가
이튿 날은 토하고 사흘 째 되던 날 겁이 난 유학생이 미국으로 전화를 하여
친구가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데 그 와중에 죽고 말았다고 한다.
한국에는 하루에 평균 50 여 명의 자살자가 있다는데 그 중 다수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통계가 있다. 우울증이란 것이 한 영혼에 슬그머니 깃들면, 틱 보다도 더
집요하고 완강한 것 같다. 한번 물면 절대로 놓치않고 그 영혼이 완전히 항복하여,
백기를 들고 아파트에서 떨어져내리거나 차에 뛰어들거나 할 때까지 밀어부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틱이란 벌레가 살 속으로 더 파고 들어가기 전에 떼내고 적당한
치료를 받아야하듯 우울증은 주위의 배려와 사랑과 무엇보다도 그 함정에서 벗어나려는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의지를 스스로가 가지기가 쉽지않은 것 같다.
그런 의지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그나 그녀의 활기찬 생명력은
우울이라는 틱이 자신을 물고늘어지도록 허락하지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언짢아지기 시작하는 날은 정말 바닥이 없는 검고 좁은 우물에라도 떨어져
나리듯 어디론가 한없이 하강해가는 마음을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웠던 날들이 제법
있었다. 젊은 날에는 친구도 찾아가고, 음악도 귀청이 떨어지게 틀어놓고, 미친듯이
해변을 향하여 속도를 올리기도하고 등 별 위로가 되지않는 방법을 많이 택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보니 그런 것들이 기운에 부치기도하고 부질없어졌는데.
어느 사이에 마음에 어려움이 생기면 그것이 우울 모드로 바꾸어져, 그것에
막 휘둘리기 전에 무엇인가 하나라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어 감사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쓰는 자신을 보게되었다. 아무래도 기운이 없어서 그 중 쉬운 방법에
적응하여 살아남으려는 얇은, 무의식의 시도이겠으나 이 방법은 때론 효과가 있다.
오늘 처럼 그동안 그리웠던 한 줄기 햇살이 살짝 비추자 마음이 즐거워졌었듯이,
너무 흔해서 무시하거나 관과하며 지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감사를 하다보면
어느 사이에 생은 다시 살만하면서 신기루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조금 멀리서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틱에 물리지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설사 물렸다고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지않도록 자기의 생을 지켜야하는 것이 의무이고
권리라면, 그래 이번에는 이 생을 내 것으로 확실하게 잡을 수 있을지몰라 꿈꾸면서,
가까이 가면 다시 저멀리 앞으로 사라지고말 것이 뻔한, 생의 신기루를 향해 다시
한발을 옮길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