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another woman 2013. 3. 16. 05:57

박완서 선생님의 단편이다.  남편의 예순 한살에 환갑기념으로 자녀들과 친척들이

모여 잔치를 하고 기념 사진을 촬영한지 얼마되지않았을 때였다. 평생 담배를 즐긴

남편은 항상 새벽에 기침을 했다. 아내는 그 기침소리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아 싫다는

남편을 검진을 받게했다. 결과는 폐암으로 벌써 전이가 된 상태라 여덟 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일단은 암이 멈춘듯하여 경과를 두고보기 위하여 잠정적으로 항암 주사를 중단하였다. 

퇴근 후 한 두 접시의 음식으로 소주 반병을 즐기는 남편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듯

평상시처럼 평온하게 행동하고 아내는 속으로 마음을 졸이며 그 시간을 소중히 꾸려나간다.

갖가지 민간요법이나 비싼 약으로 남편을 완전히 치료하겠다고 볶아대어도 남편은

평온한 태도로 아내를 위로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활해나간다.


어느 날 퇴근하는 남편을 본 아내는 걸음걸이가 왜 그러냐고 소리치고 난감한 남편은


아무리 바로 걸으려고 그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병원에서 암세포가 뇌로 퍼졌다고


다시 입원하였다. 혼자 누워서 방사선을 이마가 새까맣게 타도록 쬐어도 암세포는


줄어들지 않았다. 항암치료 동안에 머리가 모두 빠져 아내는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모자를


사오도록 했다. 팔 개월동안 남편은 늘 이 모자, 저 모자를 쓰고 다니며 이 모자는 교수처럼


저 모자는 연예인처럼 보인다며 농을 했다. 


아내는 전쟁 직후 어지러운 시절에 미팔군에 취직하여 남자가 없는 가족을 부양하다가


올케가 점포를 낼만큼 돈을 모으자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남편이 양반이


아닌 중인 집안이라고 반대를 하다가 혼수로 아무 것도 안해준다고 했다. 아내는 물론


바라지도 않았으나 모든 비용을 남자가 부담하는 것이 서글퍼 그 시절에 모자는 남자들의


필수품이었으므로 마지막 월급 받은 것으로 외국에서 들어온 최고급제 모자를 사주었다.

 

아내는 평생동안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보낸 그 팔개월을 그녀의 인생 중에서 신혼시절보다


가슴 아리게 기억하며 비싼 것이 없는 남편의 유품으로 모자들을 간직하고 모자를


볼 때마다 남편의 추억에 잠긴다.



박선생님의 글이 선명하게  가슴에 와박히는 이유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 단어마다 진정성이 묻어있어 그 단어들로 이룬 문장들은 가슴을


흔들기에 충분한 힘을 지녔다. 죽음의 선고를 받은 자의 남은 시간들이 초마다 분마다


그 시간들이 죽어가는 자의 시간이  빛을 내는 원리.


물론 이 세상에 지금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언젠가는 죽음 앞에 선게된다.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현재의 삶을 살고있는 우리들은 이 삶이 영원히 끊나지않고


계속될듯이 여기며 살아가고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삶이란 그 나날의 일상들을 자주


권태롭고 뭔가 트집을 잡아 불만스럽고 어딘가 다른 더 좋은 것이 있을것 같아 


두리번거리고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지않고  등등 갖가지 괴로운 일에 직면할 원인들을


좌초하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죽기위해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죽음을 피해간 목숨은 아무 것도 없다.


때로 슬며시 지나가는 뉴스에 영원히 살기위해 자신을 반기계 인간으로 만드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언젠가 티비에서 그런 내용의 영화를 보고 그런


종류의 삶은 저주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옛날 옛적에 잠수함이나 비행기도 만화에


나오다 현실이 되었으니 인간복제도 가능한 시대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 세상에


반은 기계인간들이 영원히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불교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꺼지지않고 


타오르는 불 속에서 영원히 살아야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신을 능가하고자하는 인간은 신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살라고 부여해준 신을 닮은 재능들을


이용하여 신을 반역하고 능멸하며 자기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위해 고심하나


그들이 탄생시킬 그 새로운 세상이란 지옥을 닮아갈 뿐이라고 생각된다.


동성 연애, 인간 복제, 기계인간, 인간에게 주입하려고 애쓰는 박코드 등등.


옷장에 들었던 모자를 볼 때마다 남편을 추억하던 박완서 선생님도 몇 해 전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글에서 말하듯 신혼 때보다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게 살았던 그 시간과 남편을


추억하며 곁으로 가기까지 보냈던 시간과 그 모든 시간들이 보내고 나면 한 자밤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자밤이란 두 손가락 끝으로 쥘 수 있는 나물의 양을 말한다고 한다.


사람의 한 평생이 길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가 두 손가락에 쥘 수 있는 만큼의 나물의


부피로 남을 때에서야 시간의 귀중함이라던가 관계나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이 세상의 존재들이 보내는 모든 시간은 다 별처럼 빛나기를 소원하고 그럴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지러지고 구부러지고 그늘지고 암울하고 우울하고 불쾌하고 불만에 가득하여


흐르는 물처럼 보내고 절대자의 앞에 설 날이 가까이 오면 그 동안 살아온 자신의 한 평생이


봄이 되면 길가에 다라에 가득 찬 나물을 한줌 한줌 비닐에 담아파는 할머니늬 주름 진 두


손가락에 담긴 한 줌의 나물처럼 느껴진다면, 


애잔한 슬픔이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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