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겨울 문턱에서

another woman 2006. 11. 13. 07:08

일주일에 적어도 네번 이상은 영등포 구청역에서 전철을 갈아탄다.

두번은  이쪽에서 두번은 저쪽에서 타야한다.

어제 교회가는 길에 이르게 나서지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이쪽에서 서버렸다.

 앞사람 옆사람에 섞여 멍청하게 서있다가 아차 싶었다. 빨리 몸을 움직여 다시 계단을

오르고 난간을 지나 저쪽 플랫홈으로 가서 다시 기다리고하다보니

평소보다 좀 늦게 되었다.

나뭇잎과 휴지조각들이 굴러다니는 휴식처를 지나 바람이 구렁이처럼 지나가는

골목길 저만치에 있는 교회에 다달았다. 교인들은 서로 인사하며 선교관으로 들어간다.

항상 더운 차를 대접받는 곳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팀장님으로부터 얘기를 많이 들었으나 심방 때마다 항상 공교로운 일이 생겨

빠지게 되었는데 얼마전 세브란스에 그녀가 다시 입원하고는 가게 되었다.

오래동안 암조직의 성장이 정지되어 있어 한동안 병원 출입을 끊었다가

다시 입원하였다던가. 병원에 있으면서도 그녀는 의사의 허락아래 외출을 한다.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던가 소년원 사역이라던가 오늘처럼 주일이라던가.

그녀는 외출해야할 많은 이유를 생각해내고 살아가는 일에 충실한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 오랜 외국 생활과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경력이 보인다.

세련되고 이지적이고 자신만의 독특한 아성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의 생명이 얼마남지않은 것을 아는 자의

겸허와 슬픔과 순종이 보인다. 그 분위기가 그녀를 병색이 완연하지만

근접할수없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고있다.

몇년전 남편을 보내고 아들 하나만 남아있다고 한다.

 

검은 파카를 입고 천막으로 하늘을 가린 바람으로 가득 찬

휴계실에 앉은 그녀는 아직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계수하며

가슴터질듯한 간절함으로 한순간한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슬픈 일에 잠재되어있는 내가 깨닫지 못하는 은혜로

우리들이 두손가락에 흐르는 물 처럼 무의식 중에 아무런 감사없이

허락받은 생존의 귀한 시간들을 숱하게 낭비하나 그녀는 그 한순간의

가치를 가슴아프게 깨닫고 살고있다.

고뇌와 반항의 시기를 지나고 겸허와 순종과 내가 표현할 단어를 가지지못한

그 깊은 마음으로 남아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지지않는 꽃이 싫어 조화를 싫어하지만 사실 아직도 살아가야할 이유가

남아있는데도 져야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않을 것이다.

창조주의 시간은 영원한 현재라고한다.

그 창조주가 보시기에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 함으로 지금 돌아가나

한동안 더 있다가 돌아가나 같은 이치 일진정 오늘의 삶과 내일의 삶에 까지

집착하는 우리들의 가엾음을 그녀는 극복한 듯 싶다.

한줄기 있는 슬픔은 결혼하지않은 외아들에 대한 것일까.

 

남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행운을 안도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즈음처럼 꽃밭에 져버린 지난 여름 날의 아름답게 활짝 핀 꽃들이

검게 쭈그러져 말라붙어 잔해만 남고 바람이 불때마다 우수수 떨어져

이곳저곳으로 굴러가는 마른 낙엽들의 종말을 볼 때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날까지 자신 속에 잠재한

아름다움과 귀함과 선함을 발휘하도록 애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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