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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ther woman 2008. 1. 21. 19:24

아름다운 이별의 댓글을 주신 늘 친밀감을 갖게하는 블로그 친구가 자신도

장기 기증을 하고 싶다고 썼다.  작년에 그 기증 문제로 작은 혼란이 있었다.

봄날 어느 날 일이 끝나고 차를 마시며 휴식하는 시간  안구및 신체

기증이야기가 나와   나도 장기 기증은 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신청서를 나누어줄 때 하나 받아 두었었다. 그것을 서랍에 넣어두고 한참을

 잊어버려는데 권사님이 왜 안가지고오냐고 채근하셨다.

그러나 자녀들의 서명이 필수인데 두 아이가 다 나와 같이 있지않아 서명을 받을 형편이

안되어 신청서를 나중에 하지 하고 기입하지도 않고 두었었다.

그날 권사님과 그런 종류의 이야기 끝에 나 자신이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체 기증을 장기 기증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여 사후 신장이나 심장 등의 기관을 떼어서

필요한 사람에게 시술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숨이 끊어지고 나면 장기의 어느 부분을 쓸 수 있겠냐고 권사님은

되물으셨다. 일곱 시간 안에 채취하면 안구의 각막만 쓸수 있다고 한다.

신체 내부의 각 장기들은 이미 생명을 다한 셈이기때문에 이식이 불가능하단다.

그 내용에 좀 놀란 나는 안구 외는 더 생각해보겠어요 하고 발뺌을 하였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어느 소설 중 잊혀지지않는 장면이 있는데

의과 대학 실습실에서 해부를 하던 학생들이 지도교수가 나간 틈에

남자의 그 부분을 도려내어 여자의 그 부분에 어쩐다는 내용이었다.

나이가 들고 난 지금은 한창 청년들이니 그럴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받은 충격은 지금까지 잊혀지지않고 시체 기증이 장기 기증과는

틀리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즉시 그  옛날의 책 속의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떠올라

 더 생각해볼래요 하고 저절로 말이 나왔지만 권사님께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시대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체 해부를 한다고

육체의 각 부분 부분을 헤쳐내고 분해하고 하는 일을 상상하니

어느 사이 용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치과 대학을 나온 남편에게 그 얘기를하니까  처음에 아무 말도 안하더니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대학시절  첫 실습 시간에 교수님이 자신과 또 다른

한 명을 불러내어 톱을 쥐어주며 목 부분을 해체하라고 하여

얼굴을 돌리고 그 일을 행하려 진땀을 흘렸다고 그 광경을 설명했다.

 권사님은 이미 죽은 다음에 몸은 흙과 같은 것인데 아무 문제 없다고

강조하신다. 물론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은 알지만 어쩐지 감싸오는 엷은 소름끼침은

어쩔 수가 없다.  그 날 저녁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일을 하면서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일동의 그 뜰에서 있었던 장면이 사라지지않았다.

지난 사월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시체 기증을 하신다고 장례도 없이

대학 병원으로 무슨 짐짝 처럼 실려가신다면 나는 신청서에 자녀로서

서명을 과연 하였을까 자신이 없다.

 

끝까지 의연하시던 권사님과 울고 불고 하여도 서명을 한 그 자녀들과

아이들이 떠오른다. 어른들은 슬퍼하지만 어스름 속에서 쌓인 눈이 빛을

반사하는 눈구덩이를 오르내리며 놀고 싶어하던 무슨 영문인지 모르던 그 손자들은

아마 사춘기가 되어야  어느 날 인가부터 할아버지를 볼수도 얘기할 수도 없어진

까닭이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그 정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밤새 잠을 이루지못했지만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여 빛 속으로 걸어나가신 장로님과

그 가족들에게서 부활을  확고히 믿는 신앙을 보았었다. 그 모습들은

가슴에 씨앗은 뿌려졌으나 잘 자라지 못하였던 나의 부활의 신앙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는데 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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