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외출할 일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나갔다.
서대문을 지나자 커다란 이동 감옥같이 온통 철창이 둘러진 경찰버스들이
큰 골목마다 나라비를 서고 있는 것이 종로 삼가 까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교통정체도 심했다. 차마다 전경들이 앉아있고
어느 전경들은 점심 도시락 급식을 위해 차 밖으로 나와있다.
버스 안에서 엄마 무릎에 앉은 어린이가 왜 저런 차들이 많냐고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나쁜 사람 잡아가는 차라고 대답하니 아이는 저 차는
나쁜 사람을 잡아가는 차야. 엄마의 말을 되풀이 하다가 그 차들의 행열이 너무
많으니 잠잠해지고 만다. 어릴 때 방과 후 집으로 가다가 급우가 앞에 서있으면
앞에 가는 사람은 도독놈 뒤에 가는 사람은 순경 하고 노래한 적이 생각난다.
우연히 앞에 있어 도독놈이고 우연히 뒤에 있어 순경으로 빗대어졌지만
아직 어린 티가 채 가시지않은 저 전경 아이들은 무전기에 의해
지시로 움직이겠지만 자기들이 해야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나 있을까.
어느 높은 건물 아래 그늘지고 바람이 심한 거리에 한 무리의 전경들이
땅에 철모를 대고 그 위에 방패막을 깔고 열지어 앉아있다.
이들이 첫 대기조 인가보다.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인데 왜 저렇게 숱한
전경들이 나와 대기하고 있어야하는지 모르겠다. 위협용이라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나 앞으로 선거가 있으니 무리한 행동은 자제하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저 체포조가 또 다른 독재의 시작은 아닐까 잠시 우려가 지나간다.
그 시간 시위를 하고 있는 무리들이나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하루종일 버스에 갇혀있는 그들이나 나이는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어느 집 아들들은 시위자들을 때리며 끌고가기 위해 나와있고
어느 집 아들들은 바람부는 광장에서 적막한 구호를 외치기위해 나와있고
저마다의 역활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
볼일을 보고 봄꽃들을 가득히 늘어놓고 앉아 쟁반에 얹어 배달 온 점심을
먹거나 새싹과 꽃을 고르는 아낙네들이 모여있는 거리를 지나
종묘로 걷기 시작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서울의 노년 층의 남자들이 다 모인듯
북적인다. 장기나 바둑을 두고 훈수를 하고 모여서 시국 얘기들로 대화를 나누며
때론 장사치들과 흥정을 한다. 참으로 많은 상인들이 있다.
뱀이나 개구리 말린 것, 모자들, 구두, 잠바, 바지 손톱깍기, 돋보기들, 밧테리,
가방들 등등 만물상들이 한줄로 진치고 있다. 몇 시간 있어 빌딩 숲의 지평선에
그늘이 걸리기 시작하면 저들의 대부분은 오뎅, 떡볶기나 꼬치구이 등의 음식
장사들로 바뀔 것이다.
이층 커피점에 앉은 어느 시인 지망생은 바람이 불고 눈에 먼지가 들어가는
거리를 메운 각 인파들을 보면서 엘리어트의 사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황무지를 읽고 소녀는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어떤 청년이 앞을 가로 막더니 무어라 얘기하는데 하도 주위가 수선거려
무슨 소린지 들리지가 않는다. 눈치를 보니 돈얘기도 아니고 길을 묻는 것 같지도 않아
살짝 웃고 그 자리를 피하였다. 전 달에 전철에서 있던 일이 생각난다.
광화문 가는 전철에 앉아있는데 어떤 남자가 담배를 심하게 피우며
이 기차가 광화문을 가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해도 몇번을 물으며
담배를 피우는데 너무 날카롭게 비수 같은 눈이 피해지지 않았다.
그가 자기가 십년 복역을 마치고 오늘 빵간에서 나오는 길인데 하더니 돈이
십만원있냐고 당당하게 묻는데 그의 앞에 앉아있던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고
큰소리로 나무라서 그의 무서운 시선이나무라는 여자에게로 옮겨지고
나는 전철을 내리게 되었었다.
버스를 타니 한가하여 자리를 골라 앉았다. 고교 시절 아침 등교하려면
버스에 돌진하여 타고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 안에서 팔은 이끝
다리는 이쪽 무겁기 짝이 없는 학교 가방은 저쪽에 치열한 전쟁을 치루어야했던
그옛날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이봄에 햇살은 나른하지만 찬 바람은 길고 긴 여운을 남기며 거리들을
휩쓸어가며 불고 사람들은 머리를 날리며 코트 자락을 날리며
빌딩의 시멘트로 가득 찬 또다른 황무지 속에서 자기들의 길들을 뎔심히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