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샤방 샤방

another woman 2009. 1. 17. 03:59

 

 

이 동네는 몇 블록을 걸어가면 아직 농사를 짓는 벌판이 있다.

아주 번잡스런 사거리 뒤에 이런 벌판이 있어 서울에 어쩌면

이런 곳이 있을까 처음에는 놀랐는데 아이티 등 산업단지로 개발되어

보상문제로 한동안 시끄럽더니 올해부터 땅주인들에게 보상에

들어간다고 한다. 가끔 산책 삼아 그 벌판을 끼고 버스를 타러간다.

 

찬 바람이 얼굴을 에인다. 온 몸의 피부가 수축 되면서 긴장하여

바람을 맞으며 그 저항을 거슬러 걷는 몸이 자꾸 작아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고개를 들었다. 추수도 끝나지 오래되는 들판에 찬바람 만이 기승스럽다.

들판의 길가에 면하여 올해도 스케이트 장이 생겼다. 일부러 물을 채우고

얼자 갑자기 음악이 난무를 하고 주름이 고랑처럼 패인 노인이 돈을 받고

스케이트를 빌려주는 것을 시작하였다. 천막 주위로 어지러이 깃발이

날리고 그 벌판 한 편에 천막이 펄렁펄렁 못견디게 흔들리는데 노랫소리도 

어우러져 하늘에 어지럽게 맴돈다.  샤방. 샤방. 샤방.

그게 무슨 뜻인지 샤방이라고 외치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하늘이

넓다며 벌판과 한 길을 대면하여 있는 동네로 돌아다닌다. 샤방은

교회 첨탑에도 걸리고 웨딩 문화관 간판에도 걸리고 카센타의

펄럭이는 광고에도 걸려 같이 휘날린다. 샤방 샤방 샤방.

방학이라 그런지 스케이트 장에는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교 아이들이

제법 많다. 그런데 스케이트 장을 뒤흔드는 노래는 유행가 일색이다.

이별이나 사랑이나 아주 원색적인 노래 만이 그 아이들의 스케이트타기의

흥을 돋우고 있다.  온가족이 볼만한 테레비 프로에  가끔 어린이가 나와서

어른의 유행가 히트곡을 어른 뺨치는 모션과 음색으로 불러제키는 것을 보게된다.

얼마 간의 좌절이나 거절, 낙담과 실패 등 삶의 온갖 함정에 빠져 허우적

거린 후 조성이 될 그런 감정을 너끈히 소화해내는 어린이들을 보면

왠지 징그러운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햇빛 찬란한 그 시기에 있는 아이가 

저런 노래를 저런 식으로 소화하다니, 우선 놀랍고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 아이를 장하게 바라보는 부모들이나 심사의원들이 한술 더 떠서

남발하는 그 아이에 대한 칭찬을 듣기가 힘들다. 물론 아주 잘한다.

분위기나 감정의 톤이나 동작까지 어른 가수와 거의 같게 소화해내는 것은.

그러나 무엇인지 아주 어리고 신선한 나뭇잎에 벌레가 먹어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좌절된 그 사랑의 고통을 쥐어짜며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 어린 나뭇잎이 그만 가지에서 떨어져내리는 것 같다.

노래방 문화가 너무 발달되어 그런가보다 짐작하여도 왜 노래는 유행가

밖에 없을까. 사실 나이가 들수록 유행가가 싫지는 않다. 대략 삼십 오년

전즈음, 청년 시절에는 주로 르네상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클래식을

자주 들었다. 세시봉에선 팝송을 들으며 투명한 유리잔에 레몬 조각이

초승달 처럼 들어있는 홍차를 마셨었다. 그 당시 아는 곳이 종로 세시봉과

그 르네상스 두 곳 밖에 없었기도하고 늘 다니던 곳을 선호하던 탓에

그 두 곳만 단짝 친구와 드나들어었다. 지금은 대체적으로 음악을

찾아가며 듣지는 않고 어쩌다 들을 형편이 되어 가끔 들리면 듣는

형편이다. 유행가가 들리면 듣기도 한다. 유행가의 곡조나 가사들은

말초적으로 심금을 울리며 사람들의 감정을 직선으로 자극한다. 아마

점점 더 무디어가는 감정이나 감성들을 그 노랫가락이 자극해주어 힘

안들이고 옛날의 그 감정의 파노라마로 돌아가는 것이 싫지않은듯 하다.

가끔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비목, 백만 송이, 서글픈 사랑 등등,

그런 노래들을 들으며 우울에 잠길 때도 있지만 아이들의 심령은 아직

때묻지않고 희망을 품고 어린이다운 생각과 분위기에서 자라나야하지

않을지. 주로 초등학생이 와서  그 선정적인 유행가 가락에 맞추어 몇

시간씩 얼음을 지치다 가면 그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어떤 흔적이 남을까.

테레비를 틀면 밤낮을 구분않고 무턱대고 튀어나오는 선정적인

장면들이나  목숨을 푹푹 죽여대는 게임들이나 그런 무수한 곳에서

튀어나와 아이들을 어둠의 가지를 휘두르며 두둘겨대는 오늘 날, 어른들은

어떻게 그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어야할까.

 

지금은 한 밤의 중간이다. 한참 자고있었는데 어디선가 샤방샤방 소리가

들려 잠이 깨었다. 이게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잠시 의아하다가 그 샤방이라는 곡조가 내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서 스케이트를 잠시라도 탄 것도 아니고 그 곳을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그것도 유행가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그 노랫가락에

쫓기듯 걸음을 빨리하여 지나갔을 뿐인데 그 노래는 몸 속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잠이 든 깊은 밤 샤방샤방하면서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이다.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든다. 물을 마신 것 같이 소리로 들은 것도 몸과

영혼의 어딘가에 남아서 이렇게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우리들이 살면서 듣고 보는 온갖 것들에 지배를 받으며 종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이라면 오늘 날 매스컴을 비롯하여

각가지 매개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흘러들어오는 그 어두운 세력의

힘들을 무시할 수 없다. 아직 몸과 영혼이 자라고 있는, 더구나  분별력이

강하지않은 어린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각종 뱀과 전갈들이

우글거리는 광야에 맨발로 내쳐져 헤매이고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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