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엠에프에 버금 가는 경제의 어려움을 격는다는 요즈음, 몰락해가는 중산층과
심해질수 밖에 없는 빈부 간의 차이로 요즈음은 일억짜리 사람들이 많이
늘고있다고 한다. 만원권의 파란 것이 만장이면 일억이 되므로 그 인생이
파란만장하여 굴곡이 심하여 고생에 쪄들은 인생을 일억짜리 인생이라고
부른다는 쓴 맛을 남기는, 요새 새로이 생긴 유모어라고한다.
아리랑을 작곡한, 사업가이며 음악가인 안 모씨가 케냐의 한 종합병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는 기사와 사진을 보았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한 달
조금 넘게 체류한 기억이 떠오른다. 선교사 가족들과 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을 제외하면 어떤 이유에선지 고국에서 살지못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다가 케냐에 까지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가족들은 한국이나,
미국 등에 있고 이혼은 하지않았어도 오래 헤어진 상태이거나 이혼을 하였거나
하여 혼자 지내고들 있었다. 무슨 사연들인지는 몰라도 오죽 하면 그 아프리카
대륙까지 흘러와서 지낼까 궁금도 하고 연민도 느껴지고 했었다.
사는 곳이 고향이라고 십년을 넘게 살아오다보니 그 곳의 풍토와 사람들에게
정이 들어 마음을 주면서 사는 이도 있었다. 한국에서 유행이 지났거나
옛날 기술이 되어버린 사진기 같은 것을 가져다가 팔거나 하면서 재기를
꿈꾸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무로 조각한 장승만큼 큰 키의
조각신상을 입구에 세운, 열대나무가 나라비를 선, 서울에서 지나간 시절
거물 어깨였다는 사람이 세운, 한 호텔의 카지노에 구석에 앉아 일어날줄
모르고 요행수를 바라거나 인생이 내민 슬픔에 쫓겨 마냥 시간을 축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항에서 도시로 가는 길은 흙먼지와 각종 쓰레기가 뒹구는 넓은 진흙 길로서
주위에는 얼기설기한 함석이나 나무 집들이 마치 집을 흉내낸듯 어설프게
세워져 길게 늘어있고 키가 큰 흑인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서성이고 있다.
어스름녁 비행장을 빠져나와 자동차에 올라타고 잠시 달려 첫 빨간 신호등에 걸려
차가 멈추자 어디선가 외투를 입은 흑인 청년이 슬그머니 나타나 자동차 앞머리에
멈춰서는가 싶더니 재빠르게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사라졌었다. 앞 미러를 빼서
사라지는 것이 일초 정도 걸렸다. 벌써 세번 째라고 했었다.
케냐는 아프리카에서는 부국에 속한다고하나 대부분이 헤어날 수 없는 가난에 쪄들지만
미소를 잘 짓는 선한 인상을 풍기는 흑인들이 대다수가 거리에서 서성이며, 도독들이 많다는
나이로비는 시드니가 아주 늙어서 황폐한 모습을 한듯 자카란다가 많이 핀 것이나 등의
비슷한 인상이 있었다. 아마 영연방 이었던 이유인듯하다. 정말 낯설고 물설은 이 곳에 와서
육신의 일상을 의탁하는 일은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많은 감정과 사정과 사연들이 심하게
얽힌 실타래와 같아져 자신의 힘으론 도무지 풀수없어 그 한 쪽 끈만 쥔채 흘러들어온 곳이
아프리카가 아닐까.
중년이나 노년의 남자가 객지에서 혼자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소년 때 청년 때 한참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을 터인데 삶의 완강하고 냉정한
손길은 그들을 몇 번이나 구덩이에 내동대이질 하고 그들은 자신의 마음과 몸이
편하게 숨거나 지낼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이동을 하다보니 그 검은 대륙까지
흘러들은 모양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분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장로님 한 분은 사방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온통 가시 나무 벌판 한 중간에 몸소 몇 개인가의 집을 짓고 학교,
교회 등을 칠년이상 운영하고 계셨다. 지역 사회의 공헌도가 커서 주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사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아주 멀리 구름 낀 날이 아니면 킬리만자로의 설산이
보이는 곳이었다. 방문하였을 때 그 곳에는 빨간 지붕을 얻은 집을 학교를 맡아 운영할
여자 선교사님을 위해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의 이쪽을 향한 벽에는 창을 내지 않았다.
그 여자 선교사님이 원하지않아서라고 했다. 오직 킬리만자로가 보이는 쪽으로만
창을 내고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곳으로는 창을 내지않는 그 마음에는 어떤,
본인도 미처 깨닫지못하는 상처가 있지않을까 하지않아도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분들은 가슴에 예수님의 사랑을 품고 그 검은 대륙의 영혼들을 구원할
목적으로 온갖 불편과 외로움을 참고 오직 한 분만을 가슴에 품고 달려간다.
그 외에 갖가지 이유로 이 곳까지 흘러들어 정처없고 뿌리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한 때나 몇 때는 그 인생이 힘차고 주위 가족들이나 친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꿈에 가득 찬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업이나 인간 관계 같은 것에서 몇 번인가의 좌절을 겪다가 결국을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뚝 끊기어나가, 마침내는 자신을 흐르는 물에 맡긴 것처럼
이곳으로 저곳으로 다니다가 걸린 곳에서 어설프고 외로운 정착을 하는 것이다.
허기만을 때우는 손 쉬운 식사와 몸이 쉴 작은 숙소 마련에도 힘이 겨웁고 무엇보다
외로움이 영혼을 먹어들어가 몸과 마음이 본인도 모르게 햇빛에 시들은 상추잎처럼
되어 먼 타국의 종합병원에서 가족 누구와도 시선으로 주고받는 교감조차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다.
시간은 마디지만 쉴새없이 물 흐르듯이 흐른다. 인생에 피바가지를 쓴 듯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되지만 자신을 파란만장한 일억이구나 자조가 되는 날이
살다가보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의 손바닥 안에서는 모든 생명이 귀하고,
세상적으로 성공했다는 인생들이나 지극히 불행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 모든
인생들을 평등하게할, 공평한 신의 계산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선한 일억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축복하시는 신비한 은혜가 우리들이
결코 깨닫지못하는 방법으로 임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