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윤정희의 주름 진 얼굴에 왠지 연민이 느껴진다.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그녀도 세월에는 어쩔 수 없이 굴복한 모양이다.
주름 진 얼굴에,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미모와 청순함이 돋보이고,
어쩐지 자연스러워보이지 않는 흰모자와 꽃무늬 옷들이 어렵고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그녀가 잃지않고 가슴에 키우고 있던 세상의 아름다움과
선을 나타내듯 여겨진다.
이혼한 딸이 맡기고 간 손자와 살고있는 그녀는 생활보호 대상자이며
노인을 돌보는 알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다. 어느 날 골목을 지나다가
딸이 다리 위에서 떨어져죽었다며 거진 실성한듯한 여인을 보았다.
우연히 문화원을 지나다가 초등학교 작문 시간에 선생님께서 미자는
커서 시인이 될 수도 있겠구나 했던 말이 생각이 나며 시강좌에 등록한다.
그녀는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병의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아무에게도
말하지않는다. 그녀는 시 강좌를 들으며 시를 쓰고자하는 열망에 비례하여
시에 대해 막무가내 느껴진 어려움에 안타까워하며 낭독회도 참석을 하여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가를 여기저기 묻는다. 그러다가 손자가 자살한
소녀와 관계, 같은 학교 학생들인 6명의 남학생들이 6개월이나 연속으로 소녀를
성폭행한 결과로 소녀가 자살하였다며 부모들이 모여 아이들의 장래 때문에
쉬쉬하며 합의금을 모으는데 참석하여야했다.
윤정희는 시강좌를 듣고 중풍으로 쓰러진 노인을 돌보는 틈틈히 소녀의 집과
장례미사가 이루어진 성당이나 범죄가 이루어진 과학관 등을 찾아다닌다.
성당에서 들고온 소녀의 사진을 식탁에 놓아두어도 별 동요없이 밥을 먹는
손자를 보고 윤정희는 충격을 받지만 노인의 요구를 들어주고 합의금
오백만원을 마련한다. 저녁무렵 형사들이 찾아와 윤정희와 배드민튼을 치던
손자를 데려가고 그녀는 무심하게 시낭송에서 만나 그녀를 누님이라 부르는
형사와 계속 공을 친다. 다음 날 한 달이 되는 시강좌에 그녀는 없고,
국화꽃 한다발이 탁자에 놓여 시인을 맞이한다. 강의 처음 시인은 한달이 되면
시를 한편씩 써서 제출하기를 수강생들 중 오직 윤정희 만이 시 한편을 썼다.
다음 장면은 그녀가 쓴 시가 낭독되면서 죽은 소녀가 떠내려왔던 강물이 보이고
다리가 보이고 죽은 소녀가 환한 얼굴로 이쪽을 보며 밝게 미소한다.
아름다운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오던 저녁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소식을 들었다.
서민적인 용모에 소탈한 김용택 시인의 시강좌와 수강생들의 솔직한 마음으로
세상에서 자신이 만난 아름다움들을 발표하는 것들이 호감이 간다.
아름다움을 느낀 사연들이 각자 달랐지만 가슴으로 서로 느끼는 것들은 꽈리를
한실에 꿰듯이 가슴으로 느끼는 순화된 정서감이 서로의 시상을 부축인다.
알츠하이머 병으로 일상의 단어나 사건을 잊어가면서도 한편의 시를 쓰고자하는
안타까움과 생활의 어려움, 죄의식이 없이 게임에나 열중하는 손자에 대한
절망감과 죽은 소녀와 그 어머니에 대한 슬픔 등으로 그녀의 가슴은 응어리져있지만
시에 대한 열망을 사그라지지 않았다. 맨 끝장면을 작가는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혹자는 윤정희가 그 소녀의 마음이 되어 강물에 뛰어내렸을 것이라
짐작할 여지도 있지만 강물은 여전히 조용히 쉬지않고 흐르고 이쪽을 바라보는
소녀의 미소는 햇살처럼 환하기만하다.
아네스의 노래
그 곳은 얼마나 적막할까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좋아하는 음악이 들려올까요.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고
차마 부치지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을까요.
한번도 하지못한 고백 전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해야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도
이제 어둠이 오면
촛불이 켜지고 누군가 기도해줄까요.
하지만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않기를,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당신을 축복하리.
마음 깊이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아네스는 죽은 소녀의 세례명이다. 꽃봉오리가 펴보지못하고 그냥
낙화하였으나 소녀가 살고가지못한 이 땅의 생명에 대한 사랑이
그득한 노래이다. 그녀가 그리워한 세상은 누군가 보내지못한 편지도
받아보듯이, 하지 못한 고백을 들은듯이 그녀의 마음을 알아주는
나라이다.
그 곳에는 어둠이 와도 촛불을 키고 기도해주는 그 누군가가 있다.
또 생에 대한 사랑과 여름 한 낮의 오랜 기다림과 그 낯익은 골목들,
길가의 작은 풀꽃에도 사랑어린 시선을 주고 기억하면서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 영혼의 힘을 다해 그리운 것들을 축복하고 어느 햇빛 찬란한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다시 만날 것을 희망하는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윤정희의 그 아름다운 외모와 마음에도 왠일인지 생은 잔인하고 냉혹하여
혼자된 딸과 불량기가 있는 손자를 데리고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살지만 그녀의 마음 속 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선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그 응어리들이 가슴을 조이고 녹이어 생을 축복하고 슬픔과 절망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않고 기원하는, 죽은 소녀의 시선으로
냉혹한 생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느끼는 감수성과 간절한 소망이 감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