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내 잡초만 무성히 자라는 뒷 마당을 정리했다. 끙끙대며 삽으로 땅을
한자락 파 뒤집어 마구잡이로 엉킨 잡초 뿌리들을 흔들어 흙을 떼어내는
작업을 했다. 벽돌이 다 깔려있고 흙마당은 손바닥 만한 면적이지만 이틀
걸렸다. 담구석 알로에가 시들하여 살피니 달팽이 몇 마리가 붙어있다.
급한 김에 무의식적으로 실한 이 놈들을 떼어다가 발로 밞아버렸다. 영양이
좋다는 알로에를 먹고 살았으니 이들은 통통하고 나름 이쁜 모습이 뭉게진 것을
보고 왠지 기분이 별로였다. 일종의 살인(?)이네.
얼마 전에 본 기사가 생각난다. 이십대 초의 젊은 여자가 고양이를 고층
아파트에서 던져 죽여 비난거리가 된지 얼마 지나지않아 서였다.
육십대 초반의 여자가 옆 집고양이가 자기 집 화분을 쓰러뜨렸다는 이유로
십삼층에서 고양이를 집어 던져 죽게했다는 기사를 보고 분을 느꼈던 기억이
났다. 두 사람 다 여자 였고 이십대 초반의 아가씨는 한창 감성이 아름답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이뻐할 나이지 않을까, 그렇지않더라도 어떻게 살아있는
생명을 그 청춘의 나이에 모멸하듯 창 밖으로 집어던질까.
육십을 넘긴 나이이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평화와 체념과 감사로
빚어진 마음일터인데 살아있는 생명을 그렇게 몰인정하게 연민이 없이
집어 내던져서 죽게 할 수 있을까.
별로 쓰지않고 내버려두는 알로에지만 달팽이들이 서식하는 부분이
검게되어가며 쇠약해가는 모습에 분이 나며 순식간에 해치운 일이였다.
달팽이 측에서 보자면 이또한 생명에 대한 경이감 없이 자신들을 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고양이와 달팽이의 차이점은 무엇이냐고, 고양이의
죽음에 분을 느낀 사람이 달팽이는 그렇게 무참하게 발로 밞을 수가
있냐고 물어온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말이 있을까.
사람들은 다 자기 행위에 대하여 정당 방위의 설명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의 그녀들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결국은 같은
종류의 심성들은 아니었을까. 히틀러가 청년 시절에 그렸다는 수채화를
본 적이 있다. 수채화가 가지는 특유의 느낌대로 부드럽고 은은한 그림이었다.
그런 온유의 면이 있는 사람이 희대의 살인마가 된 것을 보면 인간의 궁극적인
죄성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것같다. 아내를 토막 살인한 사람의 이야기.
한때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만들고 그런 관계의 사람을 살인하는
이야기. 헤어지자는 여자를 납치해 차에 싣고다니면서 개먹이를 토하는
그녀에게 강제로 먹게했다는 남자의 이야기 등등. 그녀를 사랑할 때는
입맞춤을 하고싶어했을 여자에게 고통을 주면서 앙갚음을 해야하는
그 잔인성에 대해 생각이 든다. 그 환경에 그 상황에 그 이유, 등등에
자신을 파멸 시키려는 검은 손길에 등을 떼어밀리면 누구나 숨겨져있는
죄와 잔인성이 발동이 걸리고 그런 소질을 유감없이 소름끼치게 발휘하며
악한 자의 먹이감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지만 그 죄를
저지르도록 사주한 지옥의 사자는 그들을 쌍수를 들어 기뻐 환영할 것이다.
늘 이 세상에 별 인생은 없다고 강조하는 어느 분의 말처럼 이 세상에 별
의인은 없다고, 우리 모두 잔인한 죄성이 부드러운 얼굴 아래, 깊히
또는 얕이 숨기어져 있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이미 가버린
달팽이에게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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