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불면의 밤

another woman 2010. 11. 17. 16:48

 

긴장된 상태로 바쁜 하루를 감당한 탓인지 밤이 깊어갈수록 정신이

맑아지는 그 밤으로 시작되었다. 밤마다 잠이 오지않고 이 생각, 저 생각

중에서 시간은 쉬지않고 흐른다. 그 사이 깜박깜박 잠을 잤을까, 기억도

되지않는 어지러운 장면이 엉킨 꿈이 현실인지 꿈 속인지 구분이 안간다.

한 낮에는 머리 속에 성애가 잔뜩 낀 유리창같이 느껴진다. 유리창에 붙은

갖가지 기하 모양의 얼음꽃들이 뇌에 가득  피어있는 것 같다.

 

밤이 흐르는 것은 강물이 흘러가는 것 같다. 잔잔히 쉬지않고 흘러가는

그 시간은 어디를 향하여 가고있는 것일까. 두통으로 늘 고생이 되어 흰 옥양목

띠를 머리에 시위하는 사람처럼 두르고  초록빛 우아한 잎들이 날렵히 늘어진

난초 화분 옆에서 베란다를 통한 아파트 광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자그맣고

이쁜 외할머니,  산부인과 병실에서 처음  아들을 만났을 때의 그 조그만 생명에

대한 경이감, 연년생 딸아이와의 애기 때부터서로  나누던, 어린아이들 간의 작은

우정들이 기억된다.  골목 길에서 부부가 밀고 당기던 연탄 구르마나 일하는

언니가 막내동생을 안고 집안의 귀중품을 가지고 달아났던 일, 호주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에서 지내던 일, 다시 돌아와 주신 일을 잘 감당하기위해 애쓰는

일 등등 모든 것이 뒤엉키어서 과거나 현재의 구분이 없이 한덩어리로 느껴진다.

그래서 루이스는  시간이란 과거나 현재나 미래 조차도 영원한 현재라고 정의

했는지도 모른다. 암흑과도 같은 한 밤중에 감은 눈의 흐린 시선으로 현재의

시간이 흐르고 흐르는데도, 그 쉬임없이 흐른 시간이  영원히 현재로

남는 것을 바라본다.

 

우리들이 겪는 생로병사는 그 흐름 안에서 작은 일엽편주처럼 흘러간다.

가다가 바위에도 부딪치고 폭포도 만난다.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흐름들은

흐르고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더 이상 흐르지않고 표현 못할 만큼 거대하게

응집되어 육지로 물결을 보내어 찰싹거리는 그 바다는 영원한 현재와 같다.

 

우리들은  그 인생의 여정  중에 한 송이의  피처럼 붉고  탐스러운 장미를  

피우고 싶었지만  작은 꽃송이로도  피어오르지못한 자신에 대한 회한들도

그 영원한 현재에 얼음 꽃처럼  무늬를 남기며 피어있다. 하늘의 별에게 까지

뛰어오르고 싶었지만 땅에서  발을 떼지도 못했던 슬픔들이 그 영원한 현재에

깊은 가을에 보도에 구르는  프라타나스 낙엽들처럼 굴러다니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강물은 쉬임없이 흐르고 흘러서,  마음이 시들고 정신이 시들고

육신조차 시들어, 그 영혼이 신의 품에 안길 때는 그 영원한 현재에

한줄기 빛으로 남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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