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때밀이 아줌마로 나오는 고두심은 무기력한 남편과 부모의
모습으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결혼 생활에 대해 별 기대감이 없는 딸과
함께 살고있다. 남의 빚 보증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평생 아내를 고생시키는
남편은 어느 날 피곤하여 쉬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
고두심은 위인이 지금까지 무엇을 했다고 쉬고 싶냐면서, 혼자서만 쉬고
싶다면서 욕을 퍼붓고 돌아섰다. 딸은 직장에서 외국으로 연수를 나가게
되어있어 처음 해외여행이라 꿈에 부풀어 준비했으나 연수를 가지않고
집나간 아버지를 찾아 고두심의 고향마을에 있는 외삼촌 댁으로 갔다.
아버지는 그 곳에 있었고 병이 깊어서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딸을 역활을 맞은 전도연은 그 어머니의 고향 바닷가에서 자기의 모습과
꼭 같이 생긴 어머니가 젊은 청년 우체부와 사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해녀로 물질을 하여 남동생을 뭍에서 공부시키는 어머니는 글을 몰라서
남동생에게 편지를 부쳐주면 한 장당 얼마씩 주겠다고 약속하고 늘
편지를 가져다줄 우체부를 가슴 두근 거리며 기다렸다. 동생은 글을
모르는 누이에게 놀리는 말이나 써서 매 주 부쳐 주며 즐겁게 돈을 받았다.
우체부 청년은 그녀가 글을 모르는 것을 알고 해변에 사과 궤짝을 놓고
그녀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네모 칸이 된 공책과 국어 교과서를
학년 별로 사서 가르치며 시험을 보았다. 첫 받아쓰기에서 20점을 받자
잘했다며 칭찬하고 공책과 책, 연필을 더 사주며 그들은 마음을 주고 받았다.
어머니가 물질로 잠수해있으면 그가 숨비소리를 내어 그녀는 물 위로 올라와
숨비소리로 답하며 순진한 애정을 그림같이 엮어가고 있는데, 어느 날
청년은 뭍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화면은 여기서 고달프고 괴로운 고두심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영화 내용
중에는 없지만 고두심이 뭍으로 나간 청년을 찾아가 둘의 함께 살면서
딸을 낳고 가족을 이루었다. 그러나 우체국에서 일하는 남편은 그저 착하기만하여
늘 손해보고 돈을 잃고 빚보증으로 가족을 평생 고생만 시키고 본인은 깊은 병을
얻어 죽게 되었다. 두 연인 사이의 낭만적인 연애 감정은 일상의 무거운 무게에
압사당하고 그 순진하고 소박하던 해녀는 목욕탕에서 손님들의 몸을 밀어주며
욕도 잘하고 남편을 무시하고 원망만 하는 중년의 여인으로 변신해있었다.
집이나 가족에 대해 질색을 하던 딸은 섬에 와서 꿈인지, 환영인지 엄마와
아빠의 이쁘고 사랑스러운 교제를 보고 엄마에게 연락을 하였다. 내려와서도
계속 불평하던 고두심의 험한 입담은 남편에 대한 애석한 사랑에서 비롯됨을
장사를 지내는 그녀의 태도에서 알 수 있었다. 전도연은 자기를 좋아하는
고아청년과 결혼하여 딸을 낳고 엄마 고두심에게 아버지 기일이니 제사
지내게 빨리 들어오라 전화한다. 무슨 제사냐고 욕을 하던 고두심은 전화를
끊고 손님이 없는 욕탕에 잠수하며 그 때 그녀가 잠수하여 전복을 딸 때
아련히 들려오던 청년의 숨비소리를 회상하며 그 시절의 인어공주로
잠시 행복하게 되돌아간다.
정말 두 사람의 사귐은 너무 청순하고 이뻤다. 그러나 생의 현장은 그들의
그 사랑이 고목처럼 낡고 녹슨 철강처럼 험하게 변하게 했다.
사랑하던 두 남녀가 함께 겪어내야하는 일상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지게
만드는 장본인인지도 모른다. 어느 블로그에서 스티브 잡스가 입양아라는
것을 읽었다. 사랑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여자 집안의 반대로 그녀의 가족
회의에서 아이를 입양보내기로 결정했다하여 입양시키고 얼마 후 여자의
아버지가 임종하자 그때서 결혼하고 사년을 살았는데 딸 하나 두고
이혼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아버지는 스피브 잡스를 만나고 싶지만 서로
침묵하며 아무도 액션을 먼저 취하지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가슴 아프게도 입양시키고 부모 임종 후 결혼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간절한 사랑이었는데도 사년 만에 이혼을 하는 남녀 간의,
이루어졌으나 종국에는 멸절당하는 사랑의 헛점과 허무가 느껴진다.
그러나 고두심의 연기에서 인어 공주였던 처녀 시절의 그 지순한 사랑과
일상에 쪄든 입담 험한 여편네의 처절한 사랑에서 어떤 마음 떨리는
공통분모가 느껴진다.
그 공통분모가 사랑의 참모습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