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특별히 마음이 설레며 기쁨을 느끼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가을이 찾아와도 마음이
흔들리기는 커녕 심드렁해져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되는 옛 시인의 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깊어가려고 폼을 잡는 늦가을 같은 멋진 인생을 위한 바람직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것을 밀고나가기에는 아무래도 기운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그 마음이란 것도 몸이 강건해야지만 마음대로 먹어지는 것 같습니다. 주위에나 스스로에게 별로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징조는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언제나 로울러 스케이트를
타듯이 어떤 이야기에 함몰되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며 흘러갑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몸 안에 든 어떤 존재가 연기처럼 몸 밖으로 스며나가 저만치 거리를 두고 빠져나온 그 존재를
바라보고만 있듯이 느껴지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남에게 일어나는 일인듯
현실감이 결여되는 적이 간혹 있습니다. 성격적으로 별 말을 많이 하지않는데 더욱 말이 없어지며
왠만하면 조용히 지내는 것이 몸에 배여갑니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단풍이 곱게 든 잎새들을
한잎 두잎 떨구고 드러난 나목의 연민어린 모습을 닮아가는듯 합니다.
며칠 전 십 몇년 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던 독일에 사는 친구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너무 놀라고 즐거웠습니다. 그녀는 페이스 북에서 자신에게 친구 신청을 한 이가 시드니에 산다는
것을 알고 저를 찾았는데 모르지만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열흘만에 전화번호와 주소까지 알아내어
주어서 연락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분의 수고에 마음으로 감사드리며 이 곳에서 숨어살듯
조용히 지내는데도, 정말 세상은 넓기도 하지만 좁기도한것 같습니다. 누구가 누군가와 알고 또
그 누군가와 알면서 우리들은 다 그물에 각자 맺쳐있는 이슬방울처럼 서로가 연결이 되어있나 봅니다.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멀리 물러서있던 스스로가 다시 몸 안으로 들어온듯 뿌듯한 존재감으로 기뻤어요.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각자의 컴퓨터를 하나씩 안고
각자의 방에서 은둔하며, 지난 날 다정하게 지내던 이들과도 이렇게 저렇게 소식이 단절되고
지난 날의 여러 기억들만이 냇물 속의 자갈처럼 남아서 때때로 마음에 떠올라올 뿐입니다.
청년시절 참 말을 많이도 했던 것 같습니다. 소리를 내어 뭐라고 떠들지 않더라도 가슴 속에서
늘 대상을 모르게 와글거리던 말들, 때론 외침들, 그런 말들의 혼돈이 지금은 그립게 떠오릅니다.
툭하면 감정이 상해서, 마음에 들지않아서, 말이 되지않아서, 그냥 싫어서, 왠지 마음이 내키지않아서,
가슴에 흘러드는 그 많은 갖가지 이유 중 하나라도 해당이 되면 돌아서고 단절을 하는 요즘
인간관계들에서 진정한 대화란 것이 고전처럼 옛스럽고 촌스럽고 어렵게 여겨지기도하나
고전이 갖는 진실과 진정이 묻어나는 것처럼 서로들 사이를 아름답고 깨끗하게 이어줄 수있는
다리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침묵이 금이라고 하지만
때때로 적요에 파묻혀버린 말, 하지않는 말,
말을 회복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군요.
갈매기가 왠일인지 마음을 상하여 참새 친구에게서 등을 돌리고
약이 오른듯 꽁지의 깃털을 새우고 화를 삭이고 있나봅니다.
갈매기가 마음이 상한 동안 참새친구는 다른 친구를 찾았습니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거나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서로 외면하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보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참새가 새동무를 사귀어 갈매기 친구를 외면하나 봅니다.
참새를 바라보는 갈매기가 외로워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