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졌습니다. 아침 햇살이 비추이면 빨갛고 노란 단풍의 색갈들이 자랑스러이
찰랑거리며 바람이 불 때마다 못내 환희에 겨운 몸짓으로 즐거이 떨어집니다. 낙하도
제 인생의 한구절인양 슬퍼하지않고 여기저기 굴러가다 나무 둥치에 쌓여가며, 그렇게
겨울의 열린 문으로 흘러들어갑니다. 벌써 6월이 곁으로 오고있습니다.
유수같이 흐르는 세월이니 일장춘몽이니 하는 말도 이제 부질없을 정도로 시간의 흐름은
쏜살같습니다. 언덕길을 내려올 때 몸이 앞으로 쓸어질듯 기울어지면서 걸음 속도가
빨라지는 모습입니다. 빠르게 걸으면서 몸의 중심을 잡지않으면 그만 넘어져 굴러가겠지요.
그 분의 시간은 매 순간이 영원의 한 모습이라는데 왜 우리들의 시간은 매 순간이 비 온 뒤
속절없이 떨어져 휘날리다, 한 곳에 몸을 뉘여 삭아져 땅에 스며드는 그 연한 꽃잎들과 같은가요.
목을 아프게 돌리며 뒤를 바라봅니다. 지나간 일상들이 시립도서관에 부단하게 빼곡히 꽃혀있는
책들처럼 나란히 나란히 쌓여있습니다. 도서가 진열된 공간을 지날 때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날 때 반가워서 그 책을 꺼내들고 소중히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들쳐볼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왜 생은 이렇게 목이 아프게 뒤를 돌아보아도 다시 들추어내어 반추하며 가슴 벅차게
뒤적거릴 대목이나 책들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멋진 시절이었어. 다시 한 생을 허락받아도
이렇게 살아야지, 담대히 말할 나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눈을 씻고 비비고 찾아보면 어쩌다
떠오르는 단막극 같은 것이 있으려나,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삶의 마디에 있어 멋진 대목에 대담했던 대목은 고사하고 피하고 돌아서고 움추렸던 기억들이
가슴에 떠오릅니다. 그때 피하지않았다면... 돌아서지 안했다면... 손을 잡고 흔들어 대었다면...
이런 모양의 그림이 그려졌을거고 아마 더욱 보람이 있고 멋졌었을거야.
누군가가 그랬어요. 인생은 껄 껄의 연속이라고. 모든 것이 지나고 난뒤 힘도 없고 기회도 없어진
뒤 멍하게 , 아아 그 때 그렇게 할껄 이렇게 할껄 하고 생각한다는 의미겠지요.
아마 어떤 이들은 뼈 아프게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이 정도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하고
가을을 보내면서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나봅니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다기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선택한다기보다 타고난 성격을 발휘하며
살아갑니다. 환경과 성격의 한계를 극복해가면서 인간승리를 이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타고난 성격의 결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망쳐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도박을 하고 우울하였지만, 하다가 보면
종국에는 술이 자기를 알콜중독이 되도록 마셔대고 담배가 폐암에 걸리도록 사람을 피워대고
도박이 패가망신하도록 자기를 몰아가고 처음에는 살며시 우울하였던 것이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자기를 몰아갑니다. 화초를 돌보듯이 자기 자신을 돌볼 사람이 자신이라면,
영육 간에 강건하도록 창조주를 인정하고 그 분의 사랑으로 자기의 영혼을 한 포기의
난이 아름답게 꽃피도록 자기와 타인을 사랑해야합니다. 뛰어난 미술가나 음악가나 소설가
이 세상 누구라도, 아무리 천재적인 예술가일지라도 사계절과 열대 한대의 갖가지 구분을 두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연 만물 모든 것에 멋진 숨결을 불어넣은 창조주의 예술성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 최고의 예술성이 흘러넘치는 지구의 어느 작디 작은 구석에서
조용히 살며 사랑하며 슬퍼하며 즐거워하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추위로 움추려드는 겨울이 되더라도 지나간 삶이 즐겁게 회상되고 아름다운 대목으로
떠오르면 아마 추운줄 모르고 겨울이 지나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