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자들의 도시는 포루투갈의 작가 루제 사마라구의 작품이다.
그는 예순이 넘어서 작가로 인정받으며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면서 역사와 전통 속에
이어져내려온 현대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환상역사 소설의 장르를 만들었다고한다.
어느 날 차를 타고오던 나는 불현듯 눈이 안보이는 것을 알고 누군가에게 부탁해
집으로 갔다. 집에 데려다준 남자는 그 차를 훔쳐 달아나다가 자신도 눈이 안보이는 것을
알았다. 처음 눈이 먼 남자가 다니던 안과의사도 눈이 멀고 보고를 받은 당국은 눈이 먼 자들을
격리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큰 창고 건물에 그들을 수용하고 먼발치서 식량을 보급하며 군대를 시켜
감시하였다. 눈이 먼 자들은 계속 늘어만가고 형편없는 시설에서 사워나 화장실이 마땅치않아
수용자들은 고생한다. 이건물 저건물 등 수용소가 눈이 안보이는 자들로 만원이 되자
그 속에서 식량을 갈취하여 횡포를 부리는 자들이 생겨나고 약한 사람들은 식량을 나누어받기위해
같이 있는 여자들을 상납해야했다. 이 무리들 중 안과의사 부인 한 사람만이 눈이 성하여 이 모든
사태를 체험하고 가족같이 지내게된 이 무리들을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눈물겹게 노력한다.
깡패 두목을 살해하고 그 폭력배 무리들이 무너져내리자 그들은 총을 들고 그들을 감시하던
군인들이 철수한 것을 알았다. 거리로 흘러들어가자 온 도시는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안과 의사 아내는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하고 빗물에 목욕을 시키고
요기를 하며 앞 날을 위해 묘안을 짜내다가 한 사람 두 사람 씩 시력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기쁨은 잠시 눈이 보인다는 사실에 묘한 외로운 감정에 휩싸이고 의사의 아내는 말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었고 눈이 먼채로 보는것인지, 볼 수는 있는데도 보지않는 것이
눈이 먼 자들이라며 그 긴 고생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유일하게 눈을 볼 수 있었던
스스로 마저도 눈이 안보이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다.
우리들도 눈이 먼 채로 눈이 먼 자들 속에서 유랑하며 살고있는 것은 아닌지.
눈이 먼 상태로 자기 자신들을 잃고 삶의 모습 중에서 가장 모욕스런 최하의 계단까지
내려가서 모순과 의혹에 가득 찬 삶에 휘둘리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소환당하여 무엇인지도 모를 진술을 하기위해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정을
찾아헤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소통의
거부조차 눈 먼 자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보고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살고있는 지금의 이 도시에서도 작가의 눈먼 도시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과 위선과 자신의 세력만을 위한 기득권의 세력에 편승하여
눈이 먼채로 남아있기를
주장하는 자들이 많은 도시에서 이보다 더한 일이 과연 일어날 것인지.
혼자 볼 수 있었던 의사의 아내가 그 무리들을 잘 인도해나간 것처럼
소수의 눈 뜬 사람들이 그립고 또 그들의 최선을 다한 추구가,
귀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