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이 있는 길가의 광고와 반고호 그림들입니다.
한 이틀 왠일인지 잊혀지지않는 두 여자들의 얼굴이 있습니다. 즐겨보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티비프로에서 만난 여인들입니다.
한 여자는 혼자서 백여마리가 훌쩍 넘는 유기견들을 돌보는데 기초수당과 종이박스를
주워 나오는 돈으로 어렵게 충당하고 있습니다. 박스도 아이들이 걱정된다며 자전거로
재빠르게 일하며 어쩌다가 전기밥솥이라도 줏으면 돈이 된다고 좋아하며 팔천원정도의
돈을 마련하여 집으로 가더군요. 집은 무척 어지럽고 개들로 가득하고 그녀의 방은
너무 협소하고 추워서 어떻게 견디나 상상이 어지럽습니다. 길을 가다가 유기견만 보면
그녀는 마음이 슬퍼지고 그 강아지에게 연민을 느끼며 데려옵니다. 그녀는 스스로 지어준
개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어디가 아픈가를 다 알고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며 사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고 가슴이 벅차다고 합니다.
옛날에 술집을 경영하며 부하게 살았었는데 함께 사는 남자가 알콜중독이 되면서
모진 매와 멸시와 협박에 많던 재산을 다 내어주고 이런 생활을 하는데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합니다. 매도 가래침도 멸시도 없고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살아가지못하는 연약하지만 귀엽고 착한 존재들과의 생활이 좋다고요.
그러나 그 추운 겨울날 물 말아 김치가 전부인 식사나 따스한 기가 전연 없는
작은 방은 그녀가 스스로를 너무 돌보지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방송이 나가자 개먹이 공장에서 먹이가 많이 기부되고 자원봉사자들이
그녀의 방에 옷장과 전기매트를 마련해주고 비나 눈이 오시는 날 개들이 피할 수 있게
마당에 가리개 천장을 달아주었습니다.
다른 한 여인은 두 번의 뇌졸증으로 식물인간처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집 현관에 에레베이터를 만들어놓고 그녀를 휠체어에 앉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책을 시키고 돌아오면 목욕을 시키고 코에 든 줄로 미음을 흘려보내
식사를 시키며 지극정성으로 돌봅니다. 피디가 힘이 드실텐데 어떻게 그렇게 웃으면서
하시냐니까 어차피해야될 일인데 힘들게하면 스스로가 더 괴롭기 때문에 차라리 웃는다고
하시더군요. 요양원에 보내실 생각 안해보셨나니 숙이를 그 곳에 두고 어찌 하룻밤인들
자겠냐고 대답합니다. 집요하고 완강한 우울감을 풍기는 치매로 점점 파멸해가는 아내를
위하여 그녀 앞에서 춤도 추고,
숙아 우리 유럽여행 못갔는데 일어나면 유럽여행가자 숙아.
은퇴 후 지방을 여행 많이 하고 유럽으로 가자고 하는데 두번 째의 뇌줄증이
왔고 그 뇌졸증은 완강하고 폭력적으로 그녀를 파괴해버렸지만 남편의 그 극진한
정성으로 그녀는 천진하여 조금은 행복해보였습니다.
한 세상 살다보면 많은 일들이 닥아오고 지나갑니다.
지나간 어느 시기는 정말 젊고 아름다웠던 여인들이 세월의 무게에 눌려
늙고 낡은 모습으로 아프기까지 한 것은 신의 섭리라고 말들하지만,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이는 평생 곱게 깔아놓은 풀밭으로 사뿐히 살아가는데
어떤 이들은 폭풍 속을 지나가야 합니다. 쓰나미가 지나간 자국은 처참하고
회복하고 돌보아야할 것들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끝나지않기도 합니다.
참 불공평해요.
그러나 그 분은 네가 뉘라서 그것을 불공평이라하느냐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참혹한 삶이라고 그 삶의 끝이 끝이아니라 이어지는 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면 누릴 찬란한 삶은 세상에서의 괴로운 삶을 충분히 상쇄할 것이니
처음과 끝을 헤아려보면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다라는 뜻은
이해도 되고 실감도 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육신이 실감하는 삶은 이 세상의
셀수 없이 많은 씨줄들과 날줄들의 인연과 사연의 얽힘으로 파생되는 많은 사건들에게
휩싸여 눌리다보면 왠지 아슬하기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