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이 지나고 하늘이 높아지면서 뭉게뭉게 흰 구름이 퍼지고 찬 기운을 느끼게 하는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비가 내렸다.
밤에 이 비가 그치면 찬 바람이 어둑한 빈 길들을 헤매고 다닐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집 아늑한 방에서 정신 없이 잠을 자거나
아마 몇 사람인가는 잠 못 이루고 생각의 미로에서 헤매고 다닐 것이다.
한국의 계절의 변화는 금으로 그을 수 있겠다. 이 비는 단풍이 물들기를 재촉할 것이며 무르익은 과일들을 빨리 거두도록 재촉할 것이며 잘 패인 벼들을 옆으로 눕히며 벼를 베기를 재촉할 것이다. 가을이 진해지는 동안 결실과 추수를 끝내고 단풍놀이가 지나가면 시베리아 벌판의 바람이 부는 겨울이 시작되겠지. 겨울에도 장미꽃이 피어있는 땅에서 이십여년을 살다보면 계절이 가면서 내 가슴에 남기는 흔적이나 다른 계절이 오면서 마음을 설레이게하는 기억을 잊게된다.
나서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은 이땅에 돌아와 맞는 가을은 나를 설레이게한다.
성격이 원래 덤덤하여 처음 이성을 만났을 때도 흔들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 밤 나의 마음이나 가슴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코스모스 같이 흔들리고 있다.
계절마다 다른 색채와 다른 바람과 다른 햇살을 준비해두신 그 분에게 미소를 보내고싶다.
존재의 중심에 서서 옛날과는 다른 눈으로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사람들을 보게된다.
살아있어서 고맙고 반갑다. 당신들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