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다녀왔다. 돌아와 며칠을 서먹함 속에서 지냈다. 그 곳에 갔을 때에도 23년을 산 곳이었건만 한동안 서성이었는데 아무래도 나란 존재는 장소에 길이 드는 존재인가보다. 문화적 충격이라고도 말하는 이 낯설음을 극복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은 체감온도 까지 영하 20도가 되었고 그곳은 일월일일에 영상 45도를 기록하였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서울의 겨울이 겁났지만 그 곳의 더위도 가히 살인적이었다. 다행히 가끔 비가 내려서 더위도 식히고 마당일도 할 수가 있었다. 세살던 사람들은 잔디는 잘 깎아놓았으나 화단과 집뒤는 잡초가 폐허처럼 자라있었다.
날 흐린 날이면 장갑도 끼지 않고 손으로 잡초를 뿌리채 뽑아내는 전쟁을 삼 주에 걸쳐 치루었다. 울타리로 심어놓은 동백나무는 네 그루나 죽어 있었다. 몇 년 동안이나 가뭄이 심하여 정원에 물은 일주일에 두번만 줄 수 있다. 정원 일을 하면서 창조주의 신실하심과 사랑의 증거를 볼 수 있었다. 동백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이 있지만 거친 환경에 꺽어지고마는 연약함이 있지만
잡초들은 미운 모습이나 가뭄 속에서 몸을 가늘고 거세게 변화시켜 끈질기게 생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일을 하면서 어떤 덩굴식물에 놀라고 말았다. 불볕으로 잔듸의 삼분지 이가 죽어 갈색 잔듸밭 가로 화초들을 칭칭 감고 올라가는 식물이 있었다. 삼각형의 연두색 잎은 모두 싱싱하고
생명감에 넘쳐있었다. 그 식물 하나만을 놓고 보면 좋기도하지만 다른 화초들을 조이며 괴롭히는 것 같아 덩굴을 풀어내며 뿌리를 뽑아내려는데 그 뿌리들을 화초 뿌리들을 뻩어나가지 못하게 그물망을 치고 아기 주먹만한 감자같은 덩어리들을 달고 있었다. 그 곳에 저장되어있는 양분들로 인하여 그 가뭄에도 푸른 잎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는 은혜를 그 식물은 받고 있었다.
며칠간 그 뿌리들과 전쟁하며 케낸 감자같은 덩어리들은 큰무더기를 이루었다. 자신의 몸을 실처럼 만드는 잡초의 지혜와 영양을 저장하는 덩어리를 만드는 그 식물들의 지혜를 감탄하며 창조주의 사랑의 실제를 보았다. 그러나 그 실날 같으면서 강철 같던 잡초들은 손의 피부에 피가 베이게도 여러번 했다. 손톱 밑에 빠져나올 여가가 없는 흙을 보며 그냥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도했다. 서울에서는 운전을 안했어도 그 곳에서 운전대가 반대인 까닭에 잠시 혼동도 있었다. 하루 하루 할 일이나 만나야 할 사람들 로 바쁜 일정이었고이 곳에 오니 그 곳에 머물던 시간이 잠시 꾸었던 꿈과 같이 느껴진다. 며칠 만 더 있었더라면 해야될 어떤 것도 했을터인데. 참 세월이 빠르다. 얼마남지 않은 세월을 참으로 아껴가며 살아야겠다고 새해를 맞으며 다짐해본다. 이 세상을 떠날 때 해야했는데도 하지못한 여러가지 일 때문에 여한을 가지게되는 일은 피하고 싶다. 사는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살고있는 자의 마음과 자세가 문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