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그녀에 대한 회상

another woman 2007. 6. 16. 04:44

아파트 담을 따라서 서로 다투어 얼굴을 내밀며 화려하게 피어있던

해당화꽃들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붉은 눈이 하늘에서 흩날린듯이

보도에 빨간 꽃잎들이 담따라 뿌려져있다. 영화제의 붉은 카펫은 아니지만

살짜기 즈려밞고 오시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만개한 다음에 시드는 당연한 순서를 밞고있는데 아름답고 풍성한 꼿송이들이

검게 쪼그라들어 머리를 숙이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우수수 낙하하는 것을 보니

옥탑방의 그녀가 떠오른다.

 

말기 간암이라고 듣긴했는데 그날 아주 햇살이 뜨겁고 바람 한점 없는 날이었다.

전철 세번 갈아타고 마을 버스를 타고 등등 어떻게 그곳을 찾아가야할지

궁리하고 있을때 교구목사님이 가시겠다는 연락이 와서 차를 타고 한담하며 가게 되었다.

골목 입구에 차를 대고 이리저리 골목 안을 돌아 막다른 골목의 마지막 집에 다달았다.

그 담벼락에 선홍의 피와 같은 색의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골목 끝을

한폭의 그림처럼  장식하고 있었다. 길 옆으로 난 가파른 층계를 올라가니 옥탑방이 나왔다.

흰 강아지가 반색을 하며 먼저 튀어나와 꼬리를 치며 달라들고

이어 흰 운동모자를 쓰고 무표정하고 핏기없는 얼굴을 한 그녀의 딸이 나왔다.

우리들은 침대 주위로 둘러앉았다. 일어나려고 애쓰다가 미안하다는 그녀는

얼굴이 조막만하고 눈이 커다란 소녀와 같은 인상이었다. 황달이 일어나 짙은 갈색 피부에

삐적마르고 복수에 찬 배가 좀 불러있었다. 일어나면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굽혀야할 정도로

천정이 얕은 곳에 침대가 있고 이쪽으로는 싱크대, 벽쪽으로 화장대와 책상 작은 식탁까지

지금은 보기드문 레코드 판이며 책이며 옷들로 방안은 가득차있는데 그녀의 방안 집기의 일부인양 침대에 누워있었다.

큰눈과 맑은 인상으로 한눈에 젊었을 때의 얼굴은 골목 끝에서 우리들을 환하게 웃으며 반긴

해당화처럼 아름다웠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의 제일 큰 원인이 스트레스라니

이쁜 소녀 시대와 아름다운 처녀시대를 보내고 남자를 만나 딸을 낳고 기르다 혼자 된 인생 길이

그녀에게 가혹한 구석이 있었나보다 예배 보는 동안 이런저런 상상이 들었다.

골목 끝의 그방의 적요와 그 딸의 백지장 같은 무표정한 얼굴에 눌려 우리들은 안을 내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소리를 듣고 가능하다면 정을 느낄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듯 적요 속에서 소멸해가는 영혼이 풍기는 분위기에

그녀의 딸도 짓눌려있는 것이 느껴진다.

팀장님의 노력으로 샘물의 집에 연락이 되고 다행히 기다림없이 그 다음 날로 샘물의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곳은 모든 면에서 참 좋은 곳이다.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들만 입원이 허락된다.

저세상으로 가기까지물론 통증 조절 외에는 해주는 것이 없지만 정성들인 유기농의 식사와 자원호스피스들의

사랑에 가득 찬 보살핌, 아침 저녁마다 드려지는 예배와 환자 수 만큼의 간호원을 포함한 의사도 두명이 있다.

그녀가 그곳에 간지 사흘 만에 우리들은 다시 그녀를 방문했다.

 

우선 두 모녀의 표정이 우리를 안도하게했다. 특히 딸의 얼굴이 밝아지고 엄마가 지난 밤에 너무 잘 주무시더라는 등

말을 제법하는 딸의 얼굴에는 웃음도 있고 그녀의 갈색 얼굴에도 평화가 맴돌았다.

깨끗하고 따스한 샘물의 집의 분위기에는 그 옥탑방에서 느꼈던 가슴을 짓누르는 적요가 없었다.

외딴 섬에 유배된듯한 그 적요에 그녀들도 눌려왔던 모양이다.

조그많게 웅그리고 누운 그녀는 우리들과 눈을 마추며 자꾸 미소짓는데

그얼굴이 꽃과  같았다. 그리고 사흘 후에 그녀가 아주 평화 속에서 죽음을 맞았다고한다.

 

담벼락의 시들어 낙화한 꽃들을 보며 그녀의 큰 눈이 생각난다.

그녀가 낙화해야하는 정해진 때가 우리들보다 좀 일렀을뿐 우리들도 저 꽃처럼

어떤 시기에 시들어가기 시작하다 같이 시들어가던 꽃대가 더이상 그 꽃들을 감당하지 못하면

낙화하듯이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물론 나날의 일상의 변함없음이 주는 허상으로

우리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긴해도 마치 그 일이 영원히 나에게 일어나지않을듯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변함없이 가는 시간은 그날을 향하고있지 않은가.  누군가 하루가 또 지났다는 것은

종말을 향하여 하루만큼 가까워진 것이라했다.

 

 벽돌담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무성한 해당화 덩굴은 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와도

살아남아 또 내년 초여름에 불타는 꽃들을 무수히 피워내려고 궁리하며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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