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

한 해을 보내며.

another woman 2008. 12. 25. 15:46

 

 

또 다시 한해의 마지막 길목에 다다랐다. 자의도 아니고 타의도 아니게

그저 어쩌지못하는 나날의 흐름에 실려서 이 자락의 끝머리에 다달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게되고 객관적으로 보면 피부가 더 탄력을 잃었고

마음은 좋게 말하면  여유가 있어졌고 나쁘게 말하면 기운이 없어져

뭐 이래도 저래도 별 상관하기 싫어졌다고나 할까. 세월은 저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체적 정신적인 변화를 수반하여

흘러간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흘러가는 물처럼 나날이

지나가 버려,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고보면 흰머리가 늘고

온 몸의 기운이 약해가는 중년의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자신을 본다.

강의 물들의 응집력은 대단하여 저들끼리 똘똘 뭉쳐 흘러가며 때론 산길을

지나며 때론 마을이나 도시를 지나오며 잔잔한 날 한 떼의 바람이나

홍수에 쓸려내려오는 흩어진 잔재들을 싣고내려온다. 세월의 흐름도

이못지않아 인간들의 생노병사를 한 손에  흔들어대며 어떤 때는

마딘듯 착각하지만 결국은 유성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지나간 한해를 참 열심히 살았구나, 자기가 대견하여 가슴 벅차게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왠일인지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달으면 한 일보다

하지못하거나 게을러서, 아니면 의도적으로 하지않았던 일들이 분명히 떠오른다.

자연히 마음이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그 사이에 후회라던가 아쉬움이라던가

하는 여러 감정들이 원색의 기름으로 그린 추상화 처럼 형체도 알수없는

모습으로 이리저리 엉키어 가슴이 불편하고 석연치가 않다.

이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온화하시고 착하고 무엇보다

남에 대한 배려나 의리를 중요시여기시어 사위에게서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자이실 거라는 소리를 들으신 아버지의 말년이 떠오른다.

정신이 좋으실 때면 앞으로 그 분 곁으로 갈 것을 확신하고 우리에게

좋은 믿음을 가지라고 어질고 인자하신 얼굴로 당부하셨다. 그러나

두 번의 뇌출혈로 정신이 왔다갔다 하실 무렵 그 없어진 기억 중에서도

당신의 인생에서 유감이 되었던 부분을 절대 잊지않으시고 당신 자신에게

책임을 물으셨다. 주위에서 어떤 위로나 안위를 드려도 소용없이

그 회한에 대한 뿌리는 깊어서 아버지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은

말없이 아버지의 지난 날을 당신의 눈으로 헤아려보는 심정이 되곤했다.

한 해의 끝에서 아버지의 끄트머리 인생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왠일일까. 아버지는  일제와 육이오와 사일구 등을 겪으면서 시대적으로

불의와 타협하지않고 불이익을 감당하는 자리에 선 당신의 생을 왜

기억을 상실할 때면 그렇게 단죄를 하셨는지 사람의 무의식의 큰 힘에

휘둘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이 떠오른다.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소중한 일들을 잃기도 하고 잊기도 한다.

특별히 우리 전의 세대들은 그런 것들을 다 기억하면 어디 하루인들

편하랴만은 그런 상실과 망각의 지대가 우리 각자 안에 다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인간의 영혼의 복잡함과 섬세함과 부드러움에

놀라움을 느낀다. 복잡한 사회와 인간 관계나 경제 관계 등등

여러가지 수많은 사연들로 파생되는 여러가지 고통들이 망각과

상실 지대에 잠복해있다가 어느 날 생생하게 무덤 속에 있던

미이라가 일어나듯 되살아나 자신을 괴롭힐 때가 있다. 그러나

자신을 잘 알고 그 자기에 대한 배려가 특별히 한 해의 마감에 와서

필요한듯 하다. 자기가 자신의 기대를 충족 시키지못한 한 해이었더라도

실수였던, 피할 수 없었던, 잘 할 수 있었는데 결과가 잘되지않았던,

그런 모든 알파들을 마음으로 수용하고 자신이 보내었던 어느 시대에

품어진 유감을 쌓아놓고 때때로 돌아보며 자신을 괴롭히는 대신에

그 결과를 변형시킨 모습을 남은 세월동안 자신에게 다시 적용시킨다면

어떨까. 잘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아직 시간은 있을 것이다.

엘리엍이 황무지에서 커피 스푼으로 자신의 시간을 가늠질 하듯이 아직

다시 무엇인가 시도해볼 충분한 시간은 각자에게 남아있을 것이다. 

하루를 커피 스푼으로 가늠질 한다면 우리에게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가능성이 남아있는지 각자가 헤아려볼 일이다.

한해의 끝에 서서 행여 자신에게 아직도 가야할 길이 있고, 그 길을

눈 감기 전에 회환으로 남기지않게 자신을 배려하며 걸어갈 수 있는

시간들이 새해에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며 위로와 다짐을

자신으로부터 받아내야할 시간이라고, 또 다시 한 해를 보내며

스스로를 안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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